오랜만에 산책

아빠랑 같이 산책가자는 말은 흘려버리는 아들 녀석, 학교 마치고 방과후 수업에 영어학원에 저녁먹고는 숙제에 문제풀이까지 해야 하는 아들은 나가는게 힘들다고 한다. 녀석의 배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끌고 가고 싶지만 나름 힘든 일과를 보내니 안쓰러워 혼자 집을 나선다.
습한 여름에 해가 지면 기어 나와 밤길 천을 따라 걷는다. 한동안 걷지 않다 몸이 무거워 일어서기도 힘들어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집에 있는게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게 집앞 작은 천을 따라 걸었다.
1년전에는 농구에 하루 만보에 틈틈히 악기도 연주하고 제법 꽉찬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 모든게 하기 싫어지고 집안에서 뒹둘다 몸이 망가져 가는걸 느꼈다.
그냥 이렇게 살지 뭐 하다가 회사를 가거나 아주 가끔 사회적? 관계의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망가진 내 모습이 싫어서 최소한의 운동과 폭식에 대한 자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싫었는데, 나가기 조차 싫었는데, 그래도 무겁게 몸을 움직이고 밖에서 몇분만 걷다보면 자동으로 두발은 움직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약간의 숨이 차고 작은 경사를 오를때면 힘을 더 주게 된다.
걷는게 이런거다. 누구에게 그 얼마나 걸었다고 숨이 차고 힘드냐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다시 걷는게 힘이 드는 순간도 있다.
걷다보면 누군가는 뛰고, 그룹지어 뛰고, 걸으면선 얘기하는 부부, 모녀,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오고 간다. 혼자 이런 사람들을 보다 천에 수북히 자란 풀과 천을 보다 아파트 건물을 보다 높은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 멀리로는 달까지 시선이 옮겨진다. 이런저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내가 걷고 있는게 아닌 자동으로 움직이는 관광버스에 올라탄 느낌이 들때도 있다.
저기 까지만 갔다 유턴해서 집으로 가야지, 아니야 좀더 멀리가보자, 이렇게 일주일을 조금씩 늘리다 보면 적당한 거리가 나온다. 다시 집까지 돌아오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되는 거리, 아직 뛰는거 힘들어 싫고 그냥 통화하고, 때론 음악을 들으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밖에 나와 걸으면 숨이차고 땀나는것 보다 참기 힘든게 잡생각이다. 안좋은 기억 안좋은 생각에 혼자 작은 소리로 된장, 씨.. 욕도 한다. 욕을 해도 나아지는건 없더라. 차라리 깊은 한숨이 도움이 된다. 한숨으로 걱정이 날아가길 바라면서 몇번이고 몰아 쉰다.
전문가나 주위에서 걷는건 도움이 안되고 뛰어야 한댄다. 뛰면 힘들어서 잡생각이 좀 덜 나려나 했는데, 몇 미터를 뛰면 무릎이 짓눌려서 금새 포기한다. 아직은 뛸때가 아닌가 보다. 그래 우선 걷기라도 잘하자,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걷는 것도 좋은 거라고 속으로 위로 한다.
이 습한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되면 몸도 가볍고 좀 뛰어 다닐 수 있으려나? 아니면 다시 집에서 갤갤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오늘은 좀 걸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자.

운중천을 걷다 보면 특정 위치에 오리 삼형졔? 가족? (이 3마리의 오리 관계가 어떤지는 알수 없으나)흰색 깃털이 말끔한 오리들이 보인다. 반가워서 조금 다가가면 조금씩 도망가는데 궁둥이 뒤뚱거리며 꼭 모여 가는게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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