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고향은 대부분의 면적이 논과 밭인 전형적인 한국 농촌의 모습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하교 후나 주말에 밭,비닐하우스에서 부모님 일손을 돕는 애들도 많았다.
가끔 내가 태어난 이곳에 오면 겉으로는 변한게 크게 없어 보이지만 어른들은 주름이 좀더 늘었고, 점점 사람들 구경이 쉽지 않는 동네가 되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작은 도시가 더 썰렁하게 느껴진다.
많은 편의시설이 갖춰지고, 뭔가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것들을 많이 시도하는데 사람들은 이 동네를 떠나고 있다.
그래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공간이다.
아직 친한 친구 몇명이 있고, 가끔 명절이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찾게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변해가는 지형들 그리고 이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런것들 때문인지 가끔 이 익숙한 동네가 낯선 공간으로 보일때가 있다.
그래도 내가 할머니,할아버지,삼촌,고모와 같이 대가족으로 지냈던 집은 아직 그자리에 있다.
이제 이 집도 삼촌 혼자 있지만, 가끔 가족들이 모이는 집합 장소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고등학교때 방으로 쓰던 곳에서 이렇게 글을 끄적인다.
2023년 여름에 몇일간의 쉼을 다시 이곳 이방에서 시작한다.
아 그때는 친구들 불러 모아 가요며, 팝송이며 음악을 틀고 뭔 잡담을 그렇게 했는지...
이 방은 각종 쓰지 않은 물건들로 꽉찬 창고처럼 변했지만
책상위 수북히 쌓인 짐을 정리하고 먼지를 몇번이고 닦아낸후 이렇게 맥북을 올려두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오래된 책상 위 신박한 미래 장치가 떡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이 작은 동네, 이 집, 그리고 짧지만 나만의 공간이던 이방, 이곳에서 많은 꿈과 공상으로 앞으로의 내 아름다운 인생을 그렸던것 같다.
그저 팝송과 애니 그리고 빠질 수 없는 PC 로 이 방은 풍족했다.
이것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해준 행복들이었다.
예전의 방과 다르게 이젠 저기 천장에 거미줄이, 그리고 그 밑에 떨어진 곤충의 사체도 보이고 하도 청소를 하지 않아서 여기저지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니지만 방금 정리한 책상에서 다시 뭔가를 꿈꾸고 싶다.
마치 가능성으로 가득찬 10대의 내가 된 기분을 아주 살짝 스쳐가듯이 느낀다.
이방에서 이 글을 쓰는게 뭐라고 이렇게 나를 들뜨게 만드는걸까?
왜냐면 이곳의 냄새는 아직 뭘 모르는 순진한 10대의 나를,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재밌어 하는 내 웃는 모습을,
그리고 언제가는 만날 내 꿈과 사랑을 기대하는 나를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