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끄적이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끄적이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stress and ice-cream in summer 2026

2026년 여름 8월이 시작되었다.
밖에 나가기 무섭기에 집안에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준영이와 뒹글거리며 한량이 된다.
습한 찐득거림이 싫어 에어컨에 열을 시키면 몸은 진정이 되지만 순간의 짜증과 분노로 가끔 나를 놓친다.
스트레스에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나를 달래보지만 다 비워진 아이스크림통과 과자 봉지에 내 자신에가 또 화가 난다.
그렇게 먹지 말자고 아니 좀 줄이자던 이 주전부리를 난 또 그렇게 저질러 버렸다.
멍하니 유트브 방송을 들으며 다시 밤 산책을 나가 내게 조금이라도 용서를 구한다.
나이가 들고 이런 나쁜것들을 붙잡고 있으니 몸 이곳 저곳 이상한 트러블이 생기는것 같다.
가끔 먹는 아이스크림은 행복을 안겨주지만 이렇게 홧김에 달달함을 찾는 순간에는 찰나의 쾌락뒤에 더큰 독이 된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얌전히 방콕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왠지 준영이에게 미안해진다.
방학이면 어디 여행도 가고 해야 될텐데 그럴 힘이 나지 않는다.
더워 핑계를 대고 있지만 솔직히 요새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한동안 즐겨보던 애니도 웹툰도 이제 글자를 휙휙 넘기면 줄거리 장면만 쇼츠처럼 소비시킨다. 이래도 즐거움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주말에도 랩탑을 켜놓고 뭔가 회사일 할게 없나, 커뮤니티 소식에 소소한 테스트를 해보며 알찬 시간의 보람을 느껴보려 한다.
그것도 하다 지치거나 재미가 없어지면 이렇게 뭐라도 적어 내려간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키보드 액세서리처럼 그 촉감을 실제 키보드를 치며 안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생때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한 시골집에서 내 방안에서 x86 PC winamp 로 여름 노래를 틀고 게임을 하고 있으면 노을이 방 바닦까지 길게 늘어지고 저녁밥을 먹을때가 되는 장면이 문득 생각난다.
그때는 에어컨도 없었고 달랑 선풍기와 어디서 받은지 모른 장터 부채만으로 더위를 이겨냈다.
지금은 에어컨도 있고 핸드폰으로 겜도 하지만 그때의 그맛은 나지 않는다.
오늘은 준영이과 전동 물총을 욕실에 쏘고, 체스를 하면서 새로 주문한 체스 타이머를 누르며 프로기사된듯이 뒀다. 다 재밌지만 30분을 넘기지 못한다. 나도 준영이도 각자의 영상과 게임에 다시 빠져든다.
아 이런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냥 바닥에 축 늘어진다.
남들은 이 더운 여름에도 피서다 여행이다 하면서 세상 밖 어디가를 열심히 다니고 있겠지?
sns 로 지인들의 소식에 부러움과 자신에 대한 한심한 모습을 또 하나의 작은 스트레스가 된다.
준영이가 좋아하는 게임, 팝업스토어, 뮤지컬, 서점 주말이면 열심히 다녔는데 오히려 방학이 되니 동네 서점과 인형뽑기가 요즘은 한계다.
9월이 지나고 10월이나 되면 좀 다시 리프레시되면서 어딜 가고 싶어 질까?
지금은 더위 때문에 그런거야 그래서 힘이 안나는거야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참교육(Teach You a Lesson)

몇일전 넷플릭스에 하는 "참교육"(Teach You a Lesson)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이 나라 교육에 사악한 요소들을 그대로 꼬집고 비틀다 사이다로 참교육 하는 드라마.
그 사이다 맛에 완주하게 됐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본다.

이 드라마에서는 나쁜 학생,교사,학부모,정치인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학원강사 악당도 추가하고 싶다.
인터넷 유명 강사들이 수십,수백억을 벌어 성공한 인물로 묘사되고 유명해지고선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성실을 말하고 미래의 성공을 내세우며 우리를 가르치듯 말한다.
조언이라고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다그치고 겁준다. 물리적 폭력은 없지만 주늑들게 한다.
사실 드라마에서 교육 컨설턴트 하는 사람이 잠깐 나오는데 선행학습과 레벨을 들먹이며 학부모를 무시하는듯한 말투는 현실에서도 많이 봤다.
100을 위하는척 하지만 사실 상위 10명의 성적커트라인을 들이대고 있는 사회에 맞게 우리를 맞추려고 한다.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마 어차피 공부는 10%만 하고 거기서 경쟁하는거야.
우리는 이런 대답을 듣고서 비판없이 받아드린다. 교육은 10%를 위한게 아니다. 10%를 만들기 위한 90%가 존재하는게 아니다.
물론 학원강사인데 학교 선생이 아닌데 뭔 큰 의미를 두냐 하지만 학원 강사도 학생들에겐 선생님으로 불린다.
강사에게 뭔 기대를 하겠느냐만은 성적에 울고 웃는 전국의 수많은 학생,수험생들에게 냉정한 말은 도움보단 자존감을 갉아 먹는 악수가 될 수 있도 있다.
솔직히 그냥 자기는 인생 성공한 사람이고 내말을 잘들어라 하는식의 싸가지 없는 말들이 싫다.

알게 모르게 개인의 무능/어리숙함 이런것들은 이제 DNA 에 박힌 주홍글씨 같은 세상이다.
말은 안하지만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론 미워하고 보듬다가도 정작 도움의 필요할땐 돕지 않고 경쟁할때 그냥 남이 된다.
그게 세상이라고 적응하고 노력해서 세상에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니가 지금 그렇게 나태하게 있으면 안된다고.
내가 어렸을때 몇몇 어른들에게 종종 들었던 소리다.
방구석 한쪽에 잔뜩 쌓인 수능 비디오 테잎들이 플레이 한번 안되고 그냥 먼지만 쌓인 기억이 난다.
자식을 위해 뭐라도 더 해주려고 하는 부모의 맘으로 시골에서도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켰지만 난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편했던건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잔뜩 안고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고 애써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 머리가 그정도 밖에 안된다는건 그때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나만 있었고 그렇게 요즘의 눈에는 나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냥 젊으니까 학교/숙제/학원/시험 이런것만 빼고 컴퓨터만 할 수 있으면 행복했던 때였던것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되서는 나는 부모로써 나태해지고 있다.
학원을 많이 보내지도 않고 셤을 잘 못봐서 화나긴 해도 잘했다고 말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를 크게 나무라진 않는다. (어쩌면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에게 기대를 하고 성적 때문에 화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를 보고 주위에선 어떤 반응일지 상상이 간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애를 너무 방치한다고 그래 그말도 틀리지 않지.
난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꼴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모두들 1등만 보고 달리라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있지만 꼴지, 아니 성적 하위권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교육은 성적을 올리는게 아닌데 등수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니 그냥 치열하게 경쟁에서 계속 이겨내야만 할까?
꼴지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길을 찾아 주는게 우리 아이가 매일 학교에 가는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다.

AI 로 만든영화가 칸영화제에 갔지만 환대 받지 못했다는 뉴스를 봤다.
AI 사용하면 감독,작가,예술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유명인들이 있다.
나같이 프로그래머는 AI가 코딩을 해주니 대체될수 있는 인력이지만 이런 예술가들은 철저히 자신들은 AI 와 격이 다른 존재라고 선을 긋는듯 하다.
AI시대가 되면서 개인적으로 좋은점 좀 통쾌한 점은 이런 잘난 지식인/예술가들 엿먹일 수 이는 환경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똑똑하다는것의 기본은 암기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수학공식을 철저히 이해하고 푸는 1%의 천재들외 1~20의 상위권은 공식을 외워 적용하는게 시험 점수를 더 잘받는 당연한 원리였다.
두뇌라는 성능 좋은 하드웨어를 가진 자들이 좋은 점수로 세상을 리드하고 성공하는 세상이었다.
많이 안다는것 머리속에 지식을 많이 쌓아 언제든지 끄집어 낼 수 있는 훌륭한 무기인 세상이었다.
머리속에 외우두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시험들이 주가 됐고 시험을 통과하면 권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쌓아올린 지식에 비해 낙후된 인성은 그 똑똑이들을 때론 사슬 없는 도사견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똑똑한 의사의 역할이 앞으로 나올 신약으로 힘을 잃는 시대를 솔직히 기대한다.
이런 시대의 변화중에도 우리의 교육은 아이를 성적으로 재고 있고 그 순위 경쟁에만 매몰된 교육 환경이 이 드라마에서 보이는 악의 씨앗이 되버렸다.
인권을 들먹이며 제대로된 처방을 놓치고 수십년을 방치한 결과 우리나라 교육의 비극적 사건들은 늘어났다.
드라마 처럼 사이다 해결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교육의 악당들을 처벌할 수 있고 각종 학원범죄를 막을 수 있을까?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토론은 수없이 했고 서로가 옳다고 외치고는 제대로 해결은 하지 않는다. 말만 주절주절.
결단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는 의지는 과연 있었던건지 나를 포함한 어른들에 묻고 싶다.
어떤 신문 사설에 이 드라마가 사이다라 좋지만 경계해야 한다는등의 글을 봤다.
이런식이다. 뭔가 정답이 없는 문제에 최소한의 정답을 찾은듯한 말투로 어정쩡한 중립을 말하며 그게 마치 최선인 양 그래도 폭력은 안된다 그래도 복수는 안된다 하는 그런 소리들.
살면서 모두가 납득하고 이해를 할수 있는 해결책이 얼마나 될까? 최소한 상식은 이제 내가 알던 그 옛날의 상식이 아니다.
비단 학교 뿐이 아니라 나라꼴 돌아가는 걸 보면 TV 에 보이는 밉상들 나태와 탐욕에 쩌든 기득권들에게 김무열의 화끈한 싸대기가 함께하길.

trash to /dev/null

화가 치밀어 오늘때가 있다. 예전엔 안그랬는데, 사소한것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꾹꾹 참다 애꿎은 곳에 화풀이 한다.
크게 소리를 질러보다가 욕을 크게 함질러 볼까 하다가 조용히 내뱉고 삼킨다.
왜 그럴까 했는데 그런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는 나라는 물질의 특성이라고 인정하고 더 이상 깊게 파보려 하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 요거트에 1+1 행사 상품을 보고 집어 들었다. 그런데 팩이 아닌 낱개로 되어 있었다.
8개나 되는 요거트를 어떻게 들고 갈까 고민을 잠시했다. 정문에 있는 바구니를 가져오면 될것을 그냥 양손과 몸을 바구니 삼아 쌓아 올려 계산대까지 갔다. 계산대에 내려 놓다 1개가 떨어지고 바닥에 요거트가 터져 흘렀다.
순간 계산대 아주머니는 이거 사야한다고 말하고,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얼른 터진 요거트를 집어 세웠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쪽팔림과 함께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했는지 속으로 나를 탓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져간 장바구니가 있었지면 아직 사지도 않은 제품을 여기 넣는건 왠지 물건 훔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것 같아  사용하지 못했다.
나가서 장바구니를 가져올걸, 1+1 아닌 다른 요거트 상품을 살걸하면서, 후회한다.
그렇게 집에 오는 길에 아씨 아씨 하면서 잔뜩 성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온다.
이 모습은 내가 봐도 화가 풀리지 않는 어린아이 행동 처럼 보인다.
뭐가 분한건지 그 누구도 아닌 내 잘못인것을 마치 누명이 씌워진 것 처럼 억울해 한다.
그래 안다. 이런 욕하고 투덜거림이 좋지 않다는것을.
하지만 또 한번 생각해보면 이걸 악스런 구린내 감정들을 어디다 퍼붓지 않으면 폭발할것 같았다.
그때의 그 감정이 남들이 보기에 흉측해 보여도 그 감정을 어찌할 방법을 몰라 발을 동동 굴리는 안쓰런 내가 있었다.
차라리 힘을 빼버릴까 그러면서 욕할 힘도 사라질테니
그냥 베개라도 실컷 때려볼까 그럼 좀 나아질 수도
그 당시 그 통제할 수 없는 그 감정은 바로 해결까진 아니더라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실망하지 않게 다치지 않게 안전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쓰레가 같은 욕도 감정도 모두 담아 둘 수 없기에 난 cat trash > /dev/null 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이 물질 세계의 존재인 내 말들은 /dev/stdout /dev/stderr 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netflix - hot spot

요즘 netflix 는 보통 애니만 보는데 'hot spot' 이 드라마는 2배속하지 않고 야금야금 꼼꼼히 보게 된다.
예전에 본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렌타네코)'가 재밌어서 주인공으로 나온 여배우(이치카와 미카코)를 좋아했는데, 넷플릭스 핫스팟 드라마에 이치카와 미카코가 나오는 썸네일을 보고 플레이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쁜 여주인공 때문에 봤는데 1회부터 스토리가 재밌다. 일본 특유의 소소한 일상속에 녹아드는 코믹요소가 미소 수준의 웃음을 준다.
썸네일만 보고는 후지산에 UFO, 외계인등이 출현해 핫스팟이 되는 내용일거라고 예상했는데,
외계인은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닌 중년 아저씨고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하는데 뭔가 애잔하다.
외계인,미래에서온 사람,초능력자,귀신(이래서 핫스 팟ㅋ)까지 나오는데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게 코믹요소다. 나 같으면 꼬치꼬치 캐물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을텐데 주인공과 친구들은 놀라기는해도 금새 받아들이는 모습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작은 마을의 평범한 일상 같은데 은근 집중하고 본다.
주인공과 외계인 아저씨의 알콩알콩한 대화와 초인적인 능력 사용등을 보면 넷플릭스에서 소개한 특징대로 기발하고 유쾌 발랄하다.
화려한 CG도 아니고 배우들간의 열정적인 연기 대결이 펼쳐지지도 않고 뭔가 단편 영화스런 분위기도 나면서 약간의 병맛 느낌도 난다.
난 이런 류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 드라마를 보고 일드 '트릭(나카마유키에)'이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여주인공 나카마유키에와 신비스러운 마술, 과학적인 트릭을 병맛스러운 느낌으로 풀어냈다.(이시절 일드가 참 좋았다.)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코믹도 있지만, 여배우가 주는 편안함이 크다.
이쁜 이목구비에 차가운 도시녀도 잘 어울릴것 같은데, 예전 영화 '렌타네코'에서도 느겼지만 소탈한 일상 연기가 자연스럽고 거부감이 없었다.(뭐 이건 좋아하는 연예인이라서 그런것도 같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후지산 근처 이 마을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직장인 호텔과 마트, 거리를.. 주인공 친구들과 자주가는 카페에서 파르페도 먹어 보고 싶다.

cigarette smoke

난 담배 냄새를 정말 싫어한다. 길가에서 담배피는 사람을 보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간다.
이런 내가 출근하면 사무실에 베인 담배 냄새 때문에 힘들다. 사무실은 환기가 잘되지 않아서 흡연자의 담배 냄새가 사무실에서 겹겹이 쌓인다. 흡연하시는 분들이 밖에서 담배를 피고 와도 몸과 옷에 베인 담배 냄새는 사라지 않고 사무실에서 퍼져나간다.
사무실 내 자리에 있다 보면 은은하게 계속 나는 담배 냄새에 목은 따끔거리고 머리는 어지럽다.
마스크를 써봤지만 담배 냄새는 막을 수 없었다. 공기 청정기가 몇개 있지만 냄새는 초미세먼지보다 입자가 작아서 공기청정기도 별 소용이 없더라.

여기 저기서 몇분이 기침을 하는데 나와 같은 고통이 아닌가 싶다.
10분만 들어와 앉아 있으면 나 같은 경우 숨쉬기 두려울 정도인데 아무도 이 현상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주위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담배 냄새 나는지 모른다고 하니 내가 좀 예민한 편인가?
그런데 사내 채팅방에 환기 관련 얘기를 꺼내면 동의 여론이 몇몇 보인다.
사실 회사에는 담배 냄새를 직접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 왠지 흡연자들을 탓으로 돌리기 느낌이 들고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서 단순 실내 환기가 안된다고 말은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담배 냄새다.
나 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이 더 없는지 아니면 다들 말들을 안하는건지 모르겠다.

어렸을적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가끔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집에 모여서 마작을 하시면서 담배를 피곤했다. 몇시간을 그렇게 있으면 안방이며 거실, 집안 전체거 담배 연기로 뿌옇게 변했다. 정말 화생방이 따로 없었다.
친구분들이 모두 가시고 할머니가 담배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막 뭐라뭐라 하셨는데 이때 난 할머니편이었다.
예전엔 건물내에서도 담배피고 심지어 더 옛날엔 의사가 진료 보면서 담배를 폈을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흡연구역을 제한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내 기준으로 좋아졌다.
그래도 회사들이 밀집한곳은 여기 저기 많은 흡연자들의 담배 공장이 연기를 피우고 있고 난 동네 일진을 피하는것 처럼 발걸음을 재촉한다.

암튼 나는 사무실 담배 냄새 때문에 여기저기 빈회의실을 찾아 다니며 최대한 담배 냄새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그런데 회의실, 화장실등 몇몇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나 완전 담배 냄새 탐지견인가?
목이 아프고 뭔가 먼지가 낀 느낌 때문에 퇴근길엔 가래침을 계속 뱉는다.
이 담배 냄새는 집에와서 샤워를 하고 코세척을 몇번을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흠, 재택일때는 이런 고민이 없었는데 출근하니 이런 문제를 겪는다.
낼은 또 어떻게 담배 냄새로 부터 피해있어야 할지 고민이다.

요즘은 전자담배가 많은데 솔직히 난 이 전담 냄새가 더 힘들다. 찐득한 성분의 에어로졸로 옷과 코속에 흡착돼 냄새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아래 공익 광고를 보며 모두가 비흡연자가 되는날이 오길 바란다.

cloudflare down

2025-11-18 cloudflare down
cloudflare 인프라를 사용하는 chatgpt, perplexity, cluade...등이 접속이 안된다.
이와중에 자체 인프라를 사용하는 구글의 gemini 는 잘된다.

구글은 자체 인프라가 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
작은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유명해지고 수십조를 벌었지만 수십년간 쌓아온 구글의 인프라는 짧은 시간에 채워넣을 수 없고 그래서 cloudflare 라는 회사도 같이 클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고 이걸 탓하면 안될것 같다.

이번과 같은 인프라/클라우드로 전세계 패닉 사건은 최근 몇년간 꽤 심심치 않게 본다.


모든 것들이 클라우드로 서비스되면서 아주 커다란 크루즈에 올라탄 공동운명체가 된것 같다.
크루즈는 화려하고 편하고 좋지만 한번 사고나면 생각만해도 끔직하다.
클라우드로 대세화 되는건 거대한 흐름이지만 클라우드는 점점 더 많은 서비스가 생기고 복잡해진다.
20년전인가 암튼 오래전 클라우드라는 단어가 떠오르던 초창기만 하더라도 사내에서 원격 접속해서 사용하는 베어메탈 서버에 사원들이 각자 자기의 계정을 만들어 접속하는 형태였다.
그리고 자신의 계정에서 서비스를 올리는 형태였다.
하지만 virtualmachine, domain, loadbalancer, k8s, db, ai 까지 진짜 비지니스 로직만 신경쓰면 모든걸 클라우드가 해주는 시대가 됐다.
어떤 회사 클라우드를 사용하냐에 따라 그 사용방법을 숙지해야 되고 이것도 스펙이 된다.
이런 거대하고 복잡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또 그만큼의 사람이 필요했고 많이 채용됐다.
그런데 코로나,ai시대를 거치면서 인력=비용이라는 문제가 발생했고 특히 북미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필두로 해고 바람이 불었다.
1년전 쯤인가 cloudflare 직원이 해고되는 영상을 봤다.

aws, microsoft 도 기술직도 포함해 만명단위의 많은 직원을 내보냈다.
이런 기사를 볼때 처음에 아 이렇게 직원이 없어도 회사가 돌아가는 구나.
그 많은 사람들이 잉여 인력이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내보내도 한동안 서비스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런 장애를 겪어 보니 어떤 사람을 내보냈고 내보낸 사람의 부재로 이런일이 발생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본것 같은데 사람을 자를때 능력있고 우수한 직원을 내보내는게 아닌 부서단위로 전체를 내보내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돈을 못버는 부서, ai 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부서, 그런데 이들 부서들이 지금 보기엔 필요없을지 모르는데 한달,1년 후에 어떤 사이드 이펙트가 있을지 어떻게 모두 알까?
2025년 10월에 있었던 AWS US-EAST-1 지역 장애는 단순한 기술 결함이 아니라, 핵심 인력 유출로 인한 조직적 약화의 신호로 분석되는 말도 있다.
cloudflare 자르는 것도 그렇고 어떤 기준에 의해서 납득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해고를 쉽게 한건 아닐까?
물론 ai 인간을 대체한다고 떠드는 세상이고 언제간 ai가 인간을 대신에 많은걸 대신할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아직 ai가 완벽하지 않은데 잘못된 기준과 판단으로 인재들이 퇴출되고 있지는 않는지 잘 살펴야할것 같다.
해고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까만은 지금 천명, 만명등 숫자만 크게 부각돼 질이 아닌 양으로 비용절감만을 목표한다면 이런 전세계 장애가 아니더라도 그 회사 어딘간 탈이나고 또다른 재난의 작은 불씨가 남을것 같다.
비용절감을 위해 대부분 직원은 그냥 소모품으로 보고 ai만 바라보는 리더들은 살을 빼야지 다리는 자르는 대수술이 능사가 아니라는걸 알았으면 좋겠다.
아주 커다란 크루즈는 최첨단 항해 기능과 최신 엔진등으로 항해사, 엔지니어들의 수는 줄일 수 있지만 뛰어난 항해사 엔지니어 없이 현재 수준의 ai 가 모든걸 통제하는 배를 믿고 오를 여행객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자.

고됨(hardship)

요즘 https://suno.com/ 에서 유료 구독하고 재미로 ai로 노래 만들고 있다.
맘에 드는 곡이 나올때까지 생성 하고 듣고를 반복하면 마치 내가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가 된 기분이다.
100% 맘에 쏙 드는 음악은 내가 초짜라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생성하다 보면 제법 나를 만족시키는 나만의 곡이 나온다.

아래는 가사를 직접 쓰고 생성해봤다.
(오타를 입력했는데 수정할줄 몰라 그대로 오타로 노래를 부른다. 이것도 나만의 시그니처가 되려나ㅋ)
고됨

소화도 되지 않은 지루한 일상을 집어 삼켜
아무렇지 않은듯 웃으며 그냥 넘겨버려
마지막 내 목소리도 잊은채 벙어리가 된 기분

왜 이렇게 힘들어.
나는 녹슬어 헐거운 부품.
갈리고 갈려 녹슬어 날리네
왜 이렇게 괴롭니.
너는 새롭게 빛나는 사람
빛나고 빛나 그렇게 눈부셔

내일은 같은 일상 허무한 느낌을 삼켜 버려
언제까지 이렇게 우울함 그냥 참아내나
아직도 내 가슴속 뜨거운 열정은 남아있는 걸까

왜 이렇게 힘들어.
나는 녹슬어 헐거운 부품.
갈리고 갈려 녹슬어 날리네
왜 이렇게 괴롭니.
너는 새롭게 빛나는 사람
빛나고 빛나 그렇게 눈부셔

희망과 좌절 사이를 걸어가며
언젠가 마주할 미래의 나에게
잘 했다고 고생했다고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왜 이렇게 힘들어.
나는 녹슬어 헐거운 부품.
갈리고 갈려 녹슬어 날리네
왜 이렇게 괴롭니.
너는 새롭게 빛나는 사람
빛나고 빛나 그렇게 눈부셔

거친 몸은 약해지지만
마음은 더욱 단단해지고
하염없이 오늘을 걸어간다.
그냥 그렇게 걸어간다.

요건 suno 에서 첨으로 만든 곡
노래의 스타일이나 설명만 프롬프트로 입력하고 가사,노래 둘다 ai 가 알아서 해주는게 더 좋은것 같다.

요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가사와 느낌을 잘 살려준 곡

2025년 한국의 부동산(real estate)

부동산, 주식, 환율... 언제는 안그랬냐만은 요즘 한국의 돈 이슈들은 출렁거린다.
5년을 묵혔던 삼성전자가 이제 빛을 보기 시작한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반면, 이번 정부 부동산은 잘 되나 싶다가 이번에 나온 대책과 함께 정부 담당자들의 이중적인 그들만 부쌓기 모습이 뽀록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부동산 정책 고위직들 '내로남불'에 민심 분노 '활활' (자막뉴스) / SBS"

보통 현금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산다.
누구는 말하더라 빚이 나쁜건 아니라고 집값이 비싸니 빚을 내서 집을 사는건 당연한 거라고, 대부분의 경제라 그렇게 돌아간다고.
그런데 미래의 갚아야 할 채무를 너무 쉽게 보는것 같고 나중에 집값이 오르니 지금 집을 사는건 괜찮다라고하는 그 생각이 그런 생각을 만들어 놓은 한국 정부가 밉다.
한국 같은 부동산에서 빚은 우리 모두를 갉아 먹고 있는것 같다.
미래 누군가 받아야 할 그게 우리 다름 세대일 확률이 높은데 그 폭탄을 우리는 자본주의 투자 성공/실패라는 이름으로 너무 잔인하게 내리 누르는것 같다.
아래 교수님의 말은 내가 하고 싶어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확신이 서지 않아 말하지 못했던 생각인데 속시원하게 말씀해 주신다.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 부동산은 재테크 아닙니다 남의 돈 뺏는 겁니다."

남의 돈을 뺏는것, 따지고 보면 주식도 남의 돈을 뺏고, 은행의 예금과 대출, 보는 방향과 해석에 따라 모두 남의 돈을 뺏는 일종의 돈 게임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 부동산은 정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은 돈뺏기 게임이고 모두들 이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게 무섭다.
지금 집값이 비싸지 않은가? 적당하다, 떨어져도 반값으로 떨어지는건 맞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전문가들을 보고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는 건가? 소위 말하는 부동산 전문가들 중에서도 집값은 당연히 우상향해야 되고 괜찮은 투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꿀밤을 쥐어 주고 싶다.
광수형은 그나마 내 생각에 가장 접근한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더라.
집값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하나도 맞지 않아서, 집값을 너무 떨어트리는 말만 한다더라 해서...
집값이 계속 올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쌓고 이런게 정의로운건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한거라고 나쁜게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 문제인가?
자본주의고 경제고 이 모든걸의 사람 삶을 위태롭게 하는데, 완벽하지 않은 시스템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나?
시스템은 사람이 만들었고 안 좋은 점이 있어 이를 발견하면 사람이 여론과 법을 통해서든 바꿔야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공정하고 정당하게 룰에 따라서 투자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왜 방해하냐고 묻는다면 국가는 왜 있는건가?
개인의 자유와 자산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하만 한다. 다 죽고 나혼자 수억만금을 가지면 뭐하나.
누군가는 도로를 닦고 차를 만들어줘서 우리가 쉽게 이동할 수 있고, 누군가는 땡볕에 쌀을 잘 키운 농부의 역할을 해야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지 않나?
나의 억만금은 이들 모두의 노동,노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광수형의 떨리는 호소는 몇몇의 부를 불리기 위한 부동산 정책이 아닌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한 정책을 간절히 말하고 있다.
'눈물로 호소하는 이광수 "민주당은 정부를 도와라!"'

우리는 내가 가진 자산은 안전해야되고 손실을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너무나 단순한 욕망을 기저에 깔고 있지만 자본시장에서 과연 손해없는 부동산은 맞는건가? 이건 공산주의처럼 변화를 막는 그들만의 진리가 되어가는것 같다.
부동산은 정책의 문제이고 정책에 따라 그 향방이 결정되는 시장이다.
단순히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집으로 자산을 지켜야 되는 재테크 논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가족의 생계의 기본이 되는 주거를 가지고 돈을 벌려는 투기의 마음이 더 커지는 세상이 아니라
적절한 노동의 가치가 있다면 나의 작은 집 하나는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 집은 이미 가진자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노예 같은 맘으로 살게 되지 않으려면 이 정부가 커져버린 부동산 고통의 혹 수술을 하루 빨리 시작했으면 한다.

중세시대의 모험가들(the medieval travelers)

중세시대의 모험가들(the medieval travelers), chatGPT 로 이미지를 생성해봤다.

요건 요즘 인기인 google aistudio > nanao banana 로 생성해본 이미지다.
해상도가 chatgpt 보다 높고 좀 밝은 콘솔 게임 느낌이 난다.

고된 여행길에 지친 몸을 모닥불에 녹이며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을 본다.
너무 지쳤는지 말들이 없다.
이들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가?
아니면 각자의 여행길에서 오늘 하루 밤을 같이 지낼 인연일 뿐일까?
chatGPT 가 만든 이미지 한장이 향수를 일으킨다.
이런 도트 이미지(픽셀 아트)는 어렸을적 도스 게임에서 많이 봤던 화면이다.
아마 스토리를 위해 게임 중간 중간에 이런 화면과 함께 현재의 진행 상태나 스토리를 알려주는 텍스트가 올라갔던것 같다.
내일 학교 가는 것도 잊은채 회복 물약을 마시고 마법,칼,지팡이로 적들을 물리치며 한발한발 나가는 그 진행이 지금의 쇼츠 처럼 중독적이었다.
몇번을 실패해도 저장된 위치 부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도감이 있었다.
인생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실패하기전 후회될일을 생기기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만한 치트키도 없겠지?
누구는 인생에서 많은 실패가 있어야 한다지만 이미 실패한 경험은 초자아가 고히 간직하고 있으니 다음 세이브 지점부터 시작은 준비가 단단히 되어있다.
초자아가 나를 플레이하는 인생 게임, 이 게임의 끝이 죽음이라면 중요한건 플레이 동안의 희노애락 같은 감정들 아닐까?
정말 다시 되돌리고 싶은 되돌려야만 하는 그때가 있는데 이미 망쳐버린 게임을 난 어떻게서라도 꾸역꾸역 플레이하고 있는것 같다.
내일은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설레는 마음의 여행자가 있는 반면 어떤 여행자는 내일을 두려워한다.
두려운게 모험이라지만 누구는 좋은 칼, 튼튼한 체력, 명석한 지능으로 두려움 보다는 레벨업되는 꿈을 꾸고 이미 부상당한 이런 모험을 어쩔수 없이 따라 나선 캐릭터는 불안감에 잠을 못이룬다.
인생이 어쩜 이리 게임과 같을까? 여러 실패와 성공 경험치가 각종 능력을 키우고 레벨을 올리면서 성취를 이루는 재밌는 인생 게임을 사는 사람이 적지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험의 성공담을 광장 앞에서 대중에게 대놓고 때론 은근히 자랑을 한다.
이런 성공적인 얘기들은 하나의 전설 캐릭터를 생성하고 모두들 그를 추앙한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하는 왕국이 세워진다.
난 이 게임에서 데미지를 입은 나약한 플레이어다.
물약을 마셔도 치료되지 않은 치명적인 저주에 걸린 캐릭터다.
보통 판타지 영화에서는 이런 핸디캡있는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 성장하거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하는 동화 같은 얘기를 보여 주지만, 인생은 그냥 발한번 헛디디면 낭떨어지로 게임 오버 되는 살벌한 게임이다.
여행자들의 꾹 다문 입과 무덤덤한 표정은 그냥 하는 거야 할 수 밖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에 두고 온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용으로 부터 구출하기 위해 세상의 수 많은 여행자들은 플레이어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그게 쉽지 않은걸 너무 잘 안다.
그냥 화이팅하자 서로를 독려하는 수준으로 안되는걸 잘 안다.
인생 게임 시작됐으니 누가 전원을 끄지 않는 이상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동 플레이 된다.
내가 원하던 게임이 아니라도 그냥 우주는 이 시간은 플레이 된다.
너무 오래 여행을 했나? 끝이 안보이는 모험길에서 오히려 빨리 게임이 끝나길 바라는건지도 모르겠다.
아 어둡다. 저 이미지를 보고 생각나는데로 적어 내려가니 저 이미지 처럼 캄캄한 밤이 되버렸다.
이 깊은 밤에 의지할건 서로와 모닥불 하나, 그래 그나마 저 모닥불 하나가 푹잠과 함께 나와 동료들을 위로한다.
저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여행자들이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같이할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부러운 가을 밤이다.

아래는 음악은 Medieval Dream 만든 pixel art 배경으로 잔잔한 중세 분위기 느낌이 물신난다.

그냥 오늘

지난 밤 꿈을 꿨다. 이건희 비서로 이건희의 주식도 관리했다. 주식을 사라고 해서 샀고, 팔라고 해서 팔려고 했는데 꿈에서 깼다.
뭐지 꿈에서 깨고 아침 삼성전자 주식을 봤는데 1%정도 올랐다. 흠 뭐지.
점심을 먹고 회사 가는 버스가 오는 타이밍에 맞춰 집밖을 나섰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가 타야할 버스가 나를 앞질러 가버렸다.
그래 그냥 걸어 가야지 하다 좀 걷다 문득 이발이나 하고 있으면 버스가 다시 오겠지하고 동네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왠걸 문이 잠겨있었다. 검색해 보니 오늘 휴무란다.
아 미리 검색했으면 헛걸음 하지 않았을텐데..
다시 버스 시간을 보니 기다리던 73번 마을 버스는 예정 시간도 안나올 만큼 멀리 있었다.
그래 날도 덥지 않고 하니 그냥 걸어가보자.
걸었다. 천을 따라 상쾌하게 음악을 들으며 방송을 들으며 걸었다.
반쯤 갔을까. 하늘 구름색이 좀 검다. 불안하게 비가 올것 같다.
역시나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긴 천 근처 산책길이다. 차도도 아니고 버스 정류정도 아니다.
그냥 빨리 걸어가자. 빨리 걷기 시작했지만 등에 맨 노트북 무게가 제법 느껴진다.
비가 좀더 거세진다. 옷이 젖기 시작하니 찜찜하다. 지나가는 비 일까? 잠시 다리 밑에 비를 피해 볼 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만 가면 회사 건물이다. 그래 좀 뛰자. 뛰었다. 비를 맞으며...
이렇게 예기치 않게 뛴다. 헐떡거리며 회사 건물로 들어오니 비가 잦아진다.
그나마 사무실에 들어오니 상쾌한 에어콘 바람이 반갑다.
INFP 에 맞게 그때그때 느낌가는데로 행동했다 좀 힘든 오후의 시작이였다.
미리 미용실 휴무를, 날씨를 검색했다면, 버스타려고 조금만 더 일찍 나왔다면 오늘의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도 된다.
이렇게 후회가 됐던 적이 오늘 뿐이였을까? 아마 몇일만 지나면 다시 INFP 성향대로 또다시 준비없이 그날을 맞이할것 같다. 뭐 어때? 그냥 이런 날도 있는거지.
오늘은 아이스크림으로 달래본다. 요새 출근하면 사내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사먹는게 소소한 낙이다.

나의 나루토

내 2~30대를 같이 했던 나루토..
이 나루토 질풍전을 오프닝을 오랫만에 들으면 가끔 첨 들었을때 설렘이 기억난다.
질풍전 부터는 나루토가 성장해 본격적인 이야기 확장과 볼 재미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질풍전 의미를 다시 찾아봤는데 
疾(질): 빠르다
風(풍): 바람
傳(전): 전기(傳記), 전설, 이야기
나루토가 성장한 후의 이야기로 "질풍처럼 빠르게 몰아치는 전개", "빠르고 강하게 성장한 나루토의 전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오프닝을 보면 뭔가 힘차게 할 수 있을것 같은 에너지를 받는다.

대학생때인가? 첫화부터 매주 다운로드해 보며 하나의 내 머리속엔 나루토 세상이 차근차근 넓혀지고 있었다.
동시대의 원피스도 재밌었지만 나루토의 맛은 확실이 다르고 내 취향은 나루토쪽이었다.
반지의 제왕이 판타지의 기초를 세웠다면 닌자와 술법의 세상은 나루토가 중심을 잡고 있는것 같다.
인맺는 모습이 멋있어 어설프게 흉내내던 20대, 아니 지금도 가끔 손가락 운동으로 폼을 잡는다.ㅎ
나루토와 사스케의 멋진 술법과 액션, 대립적인 관계, 그리고 이들의 어두운 과거와 고뇌, 어쩌면 진부한 소재들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성장해 가는 나루토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던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귀멸의 칼날, 주술 회전등을 재밌게 보고 있지만 시대가 달라져서인가 아니면 작품이 달라서인가 나루토의 느낌은 잘 찾을 수 없다.

오랜만에 산책

아빠랑 같이 산책가자는 말은 흘려버리는 아들 녀석, 학교 마치고 방과후 수업에 영어학원에 저녁먹고는 숙제에 문제풀이까지 해야 하는 아들은 나가는게 힘들다고 한다. 녀석의 배를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끌고 가고 싶지만 나름 힘든 일과를 보내니 안쓰러워 혼자 집을 나선다.
습한 여름에 해가 지면 기어 나와 밤길 천을 따라 걷는다. 한동안 걷지 않다 몸이 무거워 일어서기도 힘들어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다. 집에 있는게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게 집앞 작은 천을 따라 걸었다.
1년전에는 농구에 하루 만보에 틈틈히 악기도 연주하고 제법 꽉찬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 모든게 하기 싫어지고 집안에서 뒹둘다 몸이 망가져 가는걸 느꼈다.
그냥 이렇게 살지 뭐 하다가 회사를 가거나 아주 가끔 사회적? 관계의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망가진 내 모습이 싫어서 최소한의 운동과 폭식에 대한 자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 싫었는데, 나가기 조차 싫었는데, 그래도 무겁게 몸을 움직이고 밖에서 몇분만 걷다보면 자동으로 두발은 움직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약간의 숨이 차고 작은 경사를 오를때면 힘을 더 주게 된다.
걷는게 이런거다. 누구에게 그 얼마나 걸었다고 숨이 차고 힘드냐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다시 걷는게 힘이 드는 순간도 있다.
걷다보면 누군가는 뛰고, 그룹지어 뛰고, 걸으면선 얘기하는 부부, 모녀,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오고 간다. 혼자 이런 사람들을 보다 천에 수북히 자란 풀과 천을 보다 아파트 건물을 보다 높은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 멀리로는 달까지 시선이 옮겨진다. 이런저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내가 걷고 있는게 아닌 자동으로 움직이는 관광버스에 올라탄 느낌이 들때도 있다.
저기 까지만 갔다 유턴해서 집으로 가야지, 아니야 좀더 멀리가보자, 이렇게 일주일을 조금씩 늘리다 보면 적당한 거리가 나온다. 다시 집까지 돌아오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되는 거리, 아직 뛰는거 힘들어 싫고 그냥 통화하고, 때론 음악을 들으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밖에 나와 걸으면 숨이차고 땀나는것 보다 참기 힘든게 잡생각이다. 안좋은 기억 안좋은 생각에 혼자 작은 소리로 된장, 씨.. 욕도 한다. 욕을 해도 나아지는건 없더라. 차라리 깊은 한숨이 도움이 된다. 한숨으로 걱정이 날아가길 바라면서 몇번이고 몰아 쉰다.
전문가나 주위에서 걷는건 도움이 안되고 뛰어야 한댄다. 뛰면 힘들어서 잡생각이 좀 덜 나려나 했는데, 몇 미터를 뛰면 무릎이 짓눌려서 금새 포기한다. 아직은 뛸때가 아닌가 보다. 그래 우선 걷기라도 잘하자,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걷는 것도 좋은 거라고 속으로 위로 한다.
이 습한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되면 몸도 가볍고 좀 뛰어 다닐 수 있으려나? 아니면 다시 집에서 갤갤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오늘은 좀 걸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자.

운중천을 걷다 보면 특정 위치에 오리 삼형졔? 가족? (이 3마리의 오리 관계가 어떤지는 알수 없으나)흰색 깃털이 말끔한 오리들이 보인다. 반가워서 조금 다가가면 조금씩 도망가는데 궁둥이 뒤뚱거리며 꼭 모여 가는게 귀엽다.

rolling stone

rolling stone, 이러 저런 장애물에 돌이 까여 나가지만 멈출 수는 없다.
그저 앞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이란 그런것
시간을 역행하고 싶지만 헛된 망상일 뿐이고
아파서 쓰라리고 곪아 터져도 참고 아니 참지도 못하고 그냥 걸어간다.
여기엔 의식은 있지만 의지는 없고 전원이 들어간 모터처럼 돌아간다.

press backspace, 그렇게 없던일로 만들었으면 하는 과거들이 있다.
그 사건들은 과거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내가 존재하는한 아니 내가 없더라고 이름을 링킹해서 꽤 오랫동안 남을 수도 있겠더라.
그게 뭐라고 무시하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 뭔가를 이겨낼수는 없더라.
그냥 맞고 또 쳐 맞고 지쳐 잠들면 꿈속에서 스물 기어나와 나를 때린다.
감히 별거 아닌것 처럼 여기지 않으리, 다만 나도 사람인지라 많이 아프다. 조금 덜 아팠으면.

몽롱, 흐리고 기운 없이 쳐진 눈매가 오늘도 영상을 보며 예전 같지 않은 도파민을 짜낸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다 애절한 과거의 흔적을 들추는 에피소드에 나는 왜 눈물이 날까?
그냥 실컷 울고 싶었는데 마침 이거다 하고 핑계가 생긴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서럽게 훌쩍 거리며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한 배우의 연기에 동화된다.

규칙적이면서 리듬감 있는 타건에 게임을 하는 것처럼 또 하나의 엔돌핀 요소를 찾은것 같은 기분이다.
그냥 이렇게 휘갈겨 적으면 작은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래묵고 계속 생겨나지만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이 생각들을 배출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바람에 흘려 보내는 것만 같은 이 기분, 내 또 다른 해우소다.

2024 first snow


2024-11-27 올해 첫눈이 왔다.
(1~2월에 눈 온게 올해 첫눈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런 딴지는 접어두고...)

제법 눈이 많이 쌓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나무에 두툼한 눈 옷이 덥혀 있다.
졸린 눈으로 아들은 와~ 눈왔다 하면서 대뜸 소원을 빈다. 리코더 시험을 안보게 해달라고.. 흠..
리코더가 그렇게 싫을까? 개인적인 욕심은 피아노도, 플룻도, 바이올린도.. 배우게 하려 했는데.

아들 등교 시키고(또래와 달리 아직 내손을 잡고 학교 정문까지 가고 싶어하는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왠지 안쓰럽기도 하다.) 책상 앞에 앉으니 창밖의 눈 때문일까?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차분한 기분이 든다.
자동으로 켜진 유튜브에는 임윤찬의 바흐 플레이 리스트가 보인다.
When You Need a Rest : Yunchan Lim, J.S.Bach Playlist
타이틀도 참 지금에 어울린다. 플레이를 누르고 오랫만에 알리에서 산 만원대 작은 스피커로 음악을 흘려 보낸다. 익숙한 선율이 편하다.

가끔 이런 꿈을 그린다. 춥고 매섭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유럽 어느 오두막 산장에서 밖에 휘날리는 눈보라와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모닥불을 배경삼아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눈이 주는 차가움도 있지만 그로 인해 따뜻한 곳을 찾아 모이는 몇몇의 온기가 그립고 소중한 산장이다.
평소엔 자연속에 가족의 일상으로 보내고 때론 친구들을 불러 화로 앞에 둘러 앉아 밤새워 얘기하는 생활.
생각만 해도 설렌다.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아침엔 제법 먹구름으로 흐리지만 그래도 차분한 분위기 였는데, 이제 해가 조금씩 보이고 나뭇가지의 눈들도 조금씩 녹아 물방울을 떨군다.
아 짧은 감성의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 커텐이라도 치고 좀 어둡고 늘어지는 방을 만들고 싶다.

어라. 다시 눈이 더 오네^^;

code review

이제는 디폴트가 된 git/github 시대에 예전을 생각하면 svn(tortoise 제품, 맨날 톨토이즈라고 발음 했는데 실제로는 털터스[tɔːrtəs]), hg(mercurial) 이런 것들을 사용했다.
commit 하면 바로 서버에 올라가고 필요한 사람이 trunk 였나? 여기로 머지를 했던것 깉다.
이때는 코드 리뷰라는 말도 생소 했고, 내 로컬에서 새 버전을 다운받아 에러가 발생하면 그제야 서버 커밋 로그를 뒤져 어떻게든 돌아가게 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github 같은게 없어서 메신져나 동료 옆자리에 앉아 같이 코드를 보면서 수정을 했었는데...(pair programming 이라는 말도 몰랐을때다)
그러고 보면 git/github 이 이전 버전 컨트롤 보다 개발도 편하고 코드 충돌에 있어서도 교통 정리를 잘해준다. 

github 이라는 오픈 공간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여러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집단지성을 발휘해 빠른 속도로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인큐베이터가 됐다.
이런 흐름속에 PR(Pull Request)라는 과정이 추가되고, 이곳에선 더 좋은 품질을 위해 생각을 공유하고 때론 배움의 장소로 사용된다.
실제로 구글링 하면 github 이슈에서 원인과 해결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스택오버플루와 함께 깃헙은 좋은 나에게 좋은 선생님들이다. 이젠 이것도 AI 가 잘해주지만...
암튼 이 PR 과정에 코드리뷰가 진행되고 commiter 의 코드를 보며 갑론을박 토론의 장이 펼쳐지곤 한다.
이런 토론이 가끔 나쁘게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 뭐하나라도 꼬투리를 잡아 늘어지는 경우등 이런 것 들은 기여자를 기죽게하고 contribute 에 소극적이게 한다.
(https://news.hada.io/topic?id=16472 에 코드리뷰 안티패턴들)

개인적으로 품질과 함께 생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산성에 여러 의미가 있지만 난 속도에 무게를 두고 싶다.
container 가상화, 자동화 테스트, 심지어 프로그래밍까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오류를 적게 나는 언어등으로 우리는 예전 보다 더 쉽고 빠르게 (rust 생각하면)때론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AI로 품질과 생산성이 좋아져 더 좋은 서비스가 출시가 더 빨라지기까지 한다.
이런 환경속에서 서비스(software/product)가 경쟁하듯 쏟아진다.
비지니스 관점에서도 빠른 서비스 출시는 시장 장악, 매출에도 영향이 클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나,우리의 서비스도 개발을 빨리해야 되지 않을까?
물론 코드 품질은 유지하면서도 속도도 높여야 겠지.
그런데 개발과정에서 아마 문제해결을 위한 시간 다음으로 협업과정에 오는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래머들에겐 상시 진행되는 코드리뷰 과정이 많이 시간이을 잡아 먹는것 같다.
위 코드리뷰 안티패턴의 다크사이드 리뷰어가 아니더라도 들어보며 많은 프로젝트들이 리뷰 시간이 길어져 전체적인 생산성 저하가 발생되는것을 종종 본다.

코드 리뷰 과정은 적게는 1시간에 끝날 수도 있지만 길게는 일주일, 어쩌면 영영 끝나지 않고 묻히기도 한다.
리뷰가 지체로 PR 이 쌓이면 다음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병렬적으로 작업을 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하나의 브랜치로 머지되니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면 수시로 diff 부분을 따라가고 충돌부분도 수정해야된다. 때론 중복 작업 까지 발생해 진짜 현재 PR중이 것들과 영향이 없는 이슈에 대해서만 병렬로 작업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암튼 지체되는 리뷰들을 되도록 줄여 개발 진행에 막힘이 없으면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한 여러 커뮤니티,기술블로그들의 글을 찾아봤다.
빠른 리뷰를 위해 많이 말하는게 데드라인, 템플릿, 우선순위, 알림등 이런저런 규칙과 시스템이 있었다.
이런것들로 어느정도 효과를 봤다고 수치와 그래프를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이런 규칙과 제한등을 두면 사람들은 반감을 사고 오히려 리뷰를 대충하거나 소극적으로 한다 등의 안좋은 결과를 보였다는 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알림, 템플릿은 optional(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딱히)이고 중요한건 리뷰문화 인것 같다.
내 코드 작성하는 것도 바뻐 다른 사람 코드 리뷰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좀 들여다 보면 리뷰가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나같은 경우 github files changed 들을 보면 빨간색/초록색으로 보이는 차이들이 잘 읽히지 않는다. 마치 틀린그림 찾기처럼 꽤 집중을 해야 한다.
그래서 리뷰 잘 그리고 빠르게 하려면 내 생각은
- github > pulls/review-requested 로 나에게 요청한 리뷰들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
- 되도록이면 이슈를 작게 나눠 코드 라인 수가 적게, 작은 이슈를 여러번 리뷰(https://smallbusinessprogramming.com/optimal-pull-request-size 코드라인이 200 줄정도면 1시간에 리뷰 확률 90%)
- 리뷰 중 생각난 문제들은 별도의 이슈를 생성하고 현재 리뷰는 마무리
- 리뷰 커멘트 작성시 명확하고 되도록 친절한 말을 사용
- 리뷰에 도움이될 툴 사용(diff 시 중요한부분만 보여주는 툴 https://github.com/wilfred/difftastic)
- https://soojin.ro/review/ 한글로 정리된 구글 코드 리뷰 가이드 참고

좋은 코드 뿐 아니라 잘 운영되는 리뷰 문화도 팀이 생산하는 또 하나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2024년의 10월의 첫날

2024년의 10월의 첫날, 가을이다.
살랑거리는 빨간 단풍이 맘을 녹이는 나른해지는 늦은 오후 공원 벤치에 앉아 지는 석양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쓸쓸해 보이기도 한 계절이다.
그렇게 놔주지 않던 덥고 습한 짜증을 붙여주던 여름은 이제야 사라졌다.
매년 좋아하는 가을이 되면 행복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차분해지고 좀 심하면 우울하지만 내심 이 기분이 싫지도 않다.
가을은 40대의 나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시간은 그렇게 빨리 사라져 간다.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하루하루 큰 사고 없이 평탄하게 보내고 있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전쟁이나고 이런 세상이 멸망하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무난한 날이 계속되고 있어도 목적지 없이 배회하는 내 맘은 불안감을 잔뜩 품고 있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난다고나 할까.
바랬던 일들,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꿈꿨던 미래 들이 시간의 모래속으로 허무하게 빨려들어간다.
그냥 하염없이 멍하게 나의 희망들이 괴물같은 모래에 잡아 먹히는걸 보고 있으면
겉으론 태연한척 하지만 속은 건물 기둥이 하나둘 뽀개져 버리고 결국 와장창 무너져 내린다.
뭐 어때 그냥 괜찮다고 넘기는 하루도 한달이 되고 1년이 지나면 사람인지라 힘들고 무서워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몇일 아픈 허리로 방바닥 붙어있으니 더 두려워지는것 같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는게 아닐까하고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밝은 앞날만 생각하자고 했었는데, 시간은 나의 늙음은 나를 더욱더 큰 짐으로 누르고 있다.
발버둥 쳐봐야 힘만 빠지고 결국 숨막히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사슴처럼
애처로이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고 순간 덮어오는 공포에 눈물이 찔금.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여기까지 흘러들어온게 나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 뭐 이런 것들의 결과일까?
힘내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내 선천적인 무능함때문일까?
나는 나름대로 힘을 냈고 노력도 했으며 무능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 세상이 바라는 눈높이에선 그냥 별로인 인간으로 평가되는것 같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선악의 인과율로 내가 잘못한 것때문에 벌을 받고 있나?
아니면 너무 바보처럼 헤헤 거리면 살아서 그결과가 이런것일까?
나름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설레고 앞날을 생각하기만 하면 기분 좋은 그런 날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그리운 달콤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왜 오래가지 못할까? 내 팔자가 이런걸까? 태어나면서 부터 넌 이렇게 잠깐 행복하다 나중에 힘든 인생을 살게될거야라고 누군가 속삭이는것 같다.
과거의 후회가 밀려들어 오는 가을이다.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재판을 받는것 처럼 조목조목 나를 괴롭힌다.
현재의 난 다음 세상을, 천국을, 신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의 나를 더욱 아끼고 소중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로직은 과감함 대신 소심함, 좋게 말하면 신중함을 우선하고 있다.
이게 생존에 더 유리하니 나서지 말고 무난하게 가늘고 길게 가라고 가이드 한다.
훗, 웃고싶다. 나를 즐겁게 해줄 많은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작은 일에는 의욕이 있고 즐겁다. 이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올라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속도 저하

부모님댁 인터넷 연결 상품이 500Mbps 인데 8~90Mbps 속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난 이런걸 보면 어떻게든 해결이나 해결이 안되면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성격이다.
이더넷 연결 설정, 드라이버 업데이트등 다 해봤지만 이더넷 연결 속성을 보면 100Mbps 로 나온다.
결국 KT 사이트에서 SLA 품질테스트 하고 8~90Mbps를 기록을 근거로 고장 접수를 했다.

다음날 서비스 기사님이 오셔서 이것 저거 한참 체크해 보시더니 벽에 달린 이더넷 단자 고장이라 한다.
단자에 케이블 테스터기를 연결하고 1~8번까지의 LED 중 7번에서 불이 깜박이지 않는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건 관리사무실에 연락을 해보던가 자기가 어떻게 할수 없다고 하신다.

기사님이 가시고, 관리 사무실 전화를 찾아보던중 이거 언제 사람 불러서 언제 또 고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찜찜한 기분에 단자에 핸드폰 불을 가까이 비추면 핀 상태를 살펴봤다.
1~8번 핀 들을 드라이버로 살살 눌러가며 휜게 있는지 살펴봤다.
7,8번 핀 탄력이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연결이 안될 정도는 아닐것 같아 이번엔 벽에서 단자를 뜯어내고 벽에서 나오는 랜 케이블 중 7번 선을 단자에 다시 한번 꾸욱 눌렀다.
그리고 PC 를 켜고 랜선을 연결 후 이더넷 설정을 보니 1Gbps 로 뜬다.
뭐지? 이거 잘 된다는 기쁨과 기사님은 왜 이걸 해볼 생각을 안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5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날 고생하시는 기사님을 생각하면 뭐라고 할순 없고, 암튼 기사님이 원인은 찾아주셨으니 고맙다.
그리고 끈질기게 고쳐 보겠다는 나도 참 대단하다. 언제까지 이런 에너지가 남아 있을지...
그러고 보니 준영이도 이 녀석도 이 더위에 아이패드로 게임 맵을 만들고 있는데 그 집중력에 웃음이 나온다.^^;

오늘도 살아가기

요즘 웹툰,드라마에서 많이 사용되는 소재인데, 다음 세상이 있다면, 회귀가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돌이키고 싶은 후회를 교훈삼아 다시는 그 실수 그 뼈저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다음은 더 잘 수 있을까?
삶과 죽음, 단세포 아니 생명체 인지 논란이 되는 그 작은 바이러스 조차도 살고 죽는다.
왜 이런 삶과 죽음이 있는것일까? 아니 이건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몇몇 과학자들은 지금의 우리 세상은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시뮬레이션 속에서 삶과 죽음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 일종의 규칙 같은게 아닐까?
왜 이런 잡생각이 들까? 그건 힘들기 때문이지, 사는게.. 사는게 좋았던 때가 행복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만큼 행복하지 못해서? 그 최대치를 찍고 그 이상임을 바라는게 한 인간의 욕심 때문에?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내일을 기대하면 오늘 하루는 힘들어도 내일, 아니면 그 내일이 어쩌면 먼 훗날 어느때 인가 지금의 고통은 참고 이겨내길 잘했다는 생각이들 정도의 행복이 있을 거라는 기대, 그 기대에 계속 살아 갈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많이 어둡고 두렵고 무섭고 하루하루의 용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전엔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고, 아파도 괜찮다고 속으로 스스로를 토닥 였는데 말이다.
삶이 짧다면 짧은 삶에서 우리 인간들은 10년, 20년 시간이 흐를수록 보고 듣고 경험의 차이로 인해 누구는 사는게 즐겁고 희망적이지만 누구는 하루하루가 지옥일 수 도 있다. 미국의 어느 부유한자는 멋진 슈트차림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그와 비슷한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다 갑가지 아프라카에서 먹을 물이 없어 구정물에 목을 축이는 아이나 전쟁 때문에 웃음기는 완전히 사라진 어린이가 구호 물품을 받아 천막에 들어가 먼지 묻은 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을 유튜브나 TV 에서 볼때면 사는게 이렇게 차이나고 이렇게가 잔인한가 싶다.
난 노력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인가 싫어한다. 좋게 말하면 운, 조금더 냉혹하게 말하면 팔자, 뭐 이런게 현재의 세상을 더 잘 설명해주는것 같다.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가 성공한 스토리를 말하면서 노력이 뿌리가 됐다고 말하면서 대중들에거 노력해라 죽을 힘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의 비슷한 것들을 말하는 때가 있었다. 요즘은 이게 그전 처럼 잘 안먹힌다. 아마 사람들도 많이 깨닫지 않았을까? 살면서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는걸.
내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 부터, 아니 어쩌면 나의 생도 이미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기존에 굳건히 믿었던 신념들이 하나둘 박살나는 것을 많이 본다. 착함, 부지런함, 노력 보다는 태생, 주위 환경, 냉혹함이 이 세상을 살기는 더 편한 수단으로 보인다. 혹자는 그래도 사람들간의 정으로 따뜻한 온기로 살아야지 할 수도 있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온기 라는건 서로의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누구 하나 배신 때리면 기둥 빠진 위험한 건물이 되버린다. 빨리 빠져나가야 살 수 있는데 온기 타령하며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오늘은 왜 이렇게 다크하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찼는가? 왜 이러면 안되나? 좋은 생각만 하고 이런 생각들은 하지 말고 생각나도 묻어야 하나? 아니 그냥 생각나는데로 생각하자, 그럼 하다 못해 억누름으로 인한 스트레스 대신 발산으로 인한 해방감과 쾌감이라도 느낄 수 있다.
많은 어려움, 고통들이 나를 힘들게 하면 우리는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무너지던가 왜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해서 화가날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왜 내 인생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가? 고통, 어려움, 힘듦, 뭐 이런것들은 나의 인생이 아니어야 하는가?
우리의 공간은 거리는 2개의 물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리를 알 수 있고 물체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라는 개념이 있듯이, 고통도 있어야 지금의 행복감을 느끼고 소중한것을 안다. 삶과 죽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경험하지 못한 피하고 싶은 그 개념이 있으니 오늘이 무료해도 살고 감사해 하는게 아닐까?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면 그 달콤함에 빠져 때론 다툴 수 있고, 언제가는 죽음이라는 마지막으로 인해 반듯이 헤어질 수 밖에 없음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당장 지금이 사랑이 행복하니까. 그런데 이건 너무 좋은것 아닌가, 어차피 대책 없는 헤어짐(죽음)을 생각해서 뭐하겠어? 그냥 그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러면서 싸우고 헤어지더라도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눈감기 전 그 소중한 추억이라고 곱씹으면서 마지막까지 행복을 느끼는게 내 인생을 잘 사는 또 하나의 전략이지 않을까? 라고 오늘도 자신을 위로한다. 오피스 공기질이 너무 안좋아 기침하고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 받았지만 한편으로 동료들과 맛난 점심을 먹으며 잡담으로 즐거웠던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miscellaneous thought in library

도서관에서 드는 잡다한 생각들...
-----
요즘 잠들기전 인스타 Reels 를 흘겨보는데, 몇가지 찡한 기분 좋은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다.
실사는 아니고 생성형 AI로 그럴사한 풍경을 입힌 짧은 영상인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빠져 든다. 무한히 반복되는 영상에 심취해 몇분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는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것 같기도 하다.
짧은 영상중에는 빛의 마법사로 불리는 신카이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배경음악과 그 쨍한 색감들이 어울리며 춤을 춘다.
이렇게 짧은 영상으로 멋지게 편집해놓으니 새로운 영화,애니를 보는것 같다. 이런게 매스컴에서 문제라고 말하는 도파민 중독이라는걸까? 뉴스에선 전문가가 안좋은 현상이라고 했었던것 같은데...
그래 예전에는 책은 몰라도 드라마를 한편 한편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뻔한 이야기와 억지로 1시간 분량을 맞춘듯한 장면들 때문인지 유튜브에 올라온 드라마 압축을 선호한다.
-----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빠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책 읽기 습관이 들지 않은 나로서는 정독하며 책 한장 넘기는게 힘들다. 기술 서적을 보면 뭔가 알아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몇번을 반복해도 머리속에서 이해로 소화되지 않으면 더욱 더디고 결국 힘이 빠져 침대에 누워 버린다.
책으로 대표되는 습득 과정은 지난 오랜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스탠다드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교육 받아왔다. 아니 책읽는것은 거의 절대적 선과 같은 느낌이다.
이동진 이 교양 많고 유식한 아저씨가 책은 물과 같다고 했던가? 책을 읽지 않으면 어휘의 확장이 없고 어휘가 적다는건 생각을 제한 한다고 했던것 같다.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안읽어? 책을 읽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유튜브의 어느 젊은 철학자(충코)는 우리가 꼭 책이라는 고전적인 도구가 우리의 정보습득, 지식의 확장 뭐 이런것들을 이루는 절대적인건 아니라고 한다. 나도 이에 동감한다.
디지털 시계만 봤던 미국의 몇몇 어린이들은 아날로그 시계의 시침,분침을 읽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고 하고, 폰과 타블렛으로 길들여진 애들이 터치만 해봐서 연필로 글씨 쓰는것은 물론 키보드도 잘 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 당연할것 같다. 눈으로보고 손가락으로 익히고 어쩌면 작은 미세 근육, 신경들이 훈련하고 뇌에서 우리것으로 만들어 가는 메카니즘인데, 용불용설이다.
그래도 기존의 방법들이 좋아도 앞으로 계속 그럴것이라는 보장은 너무 고정관념 같다. 앞으로는 우리 머리에 외국어,기술등을 USB 10.0 으로 전송하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도 책으로 어휘를 넓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래에는 아마 책장 종이 질감을 느끼는 호르몬도 뇌에 전기 신호로 전달될거다.
즐거운 만화,추리소설 같은게 아니라면 책을 읽는다는건 나와 같은 사람에게 굉장한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가는 운동이다. 우리는 노력이 없으면 그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 대중을 향해 떠들어 대는 강연이라고 하는것들을 보면 노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내포하고 있다. 요새는 노력에 회의적인 다른 강연들도 많이 올라온다. 우리는 노력했다. 그래도 안되면 노력이 부족했다고 주위의 핀잔을 듣기 일 수 였다.
예전 김제동이 '나라가 살기 좋게 만들어야 줘야 할거 아냐?' 영상과 서장훈이 '즐기는 사람 이길 수없다? 난 죽기살기로 노력했다' 라는 2개를 묶은 유튜브 영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제동은 모든것을 세상탓으로 돌리고, 서장훈은 현실을 즉시하고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 성취한 사람으로 서장훈의 편을 많이 들어준 댓글을 봤다. 난 솔직히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타고난 특성이 거의90%을 차지한다고 본다. 노력도 타고난 재능이라고도 하지 않았나? 노력을 하게끔 하는것도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사람의 DNA 에 달리지 않았을까? 누구는 소극적 누구는 진취적고 심지어 좋아하는 것까지도 DNA로 결정되는것 같다. 선대의 수많은 생명이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은 유전자가 전달되어 우리가 이렇게 머리를 잘쓰는 동물이 된것 처럼... 나같이 키작고 약한 사람이 암만 노력하고 연습한다고 해서 서정훈 같은 피지컬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같이 농구 대결이 가능하지 않은 것 처럼. 공부 잘하는 머리, 운동잘하는 신체등 인정할건 인정해야한다. 서장훈이 조선시대 하인으로 태어났으면 과연 출세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한계에 대해서 부정하고 도어락 시대에 노력이라는 만능키를 들이대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다.
-----
각지에서 AI에 환호하면서 한편으로 AI전쟁이 활발하다. 미국은 빅테크들이 머니파워로 우수 인재와 장비를 독점하며 AI영토를 넓히고 있다. 참고로 우수한 AI인재는 전세계에서 몇백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 연봉을 많이 제시해도 nvidia AI장비가 적은 회사로는 이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와중 국내로 눈을 돌리면 네이버,카카오가 생각난다.(사실 업스테이지, 리벨리온등의 스타트업이 더 뛰어난면도 있다.)
카카오는 많은 엔지니어들이 있지만 기술보다는 외형 확장에만 힘을 쏟아 내가 볼땐 점점 쇠퇴하고 있다. 힘을 하나로 모아 날카로운 송곳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힘없는 형편없는 대장들 명령으로 아래 소대들은 각개 전투를 해서 직원들은 의욕을 잃고 쓰러지거나 탈출한다. 카카오는 쇄신 하겠다고 하는데 최근의 뉴스를 보면 쇄신은 커녕 더욱더 썩어가는 길을 걷는것 같다. 무슨 배짱일까? 내가 6년전에 썼던 '그저 그런 사람이 그저 그런 미래를 만들고 결국 망한다' 는게 딱 들어 맞았다. 앞서 말한 글로벌 기업들의 그루,아키텍트등 소위 최고 기술 권위자라고하는 직책의 사람은 수십억을 받지만 그만큼의 존경과 가치를 만들어 내고있다. 하지만 카카오의 임원급 리더들, CTO등을 보면 솔직히 그냥 그저 그렇다. 잘났으면 구글 갔겠지 하는 생각만 든다. 대표 및 비 기술 임원들의 스톡 행사로 수십업을 버는데 반해 성과는 커녕 오히려 회사에 해만 되고 있는데 왜 대우를 해주는지 모르겠다. 카카오 보다는 나은 네이버도 발버둥을 치지만 쉽지 않은데, 카카오는 정말 어쩌려고 그러는지 에효.

드라마 -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요즘 챙겨보는 잔잔한 힐링 드라마다.
재방송이 나오면 또 보고, 와 요즘 이렇게 보는 드라마가 없었는데 간만해 빠져 든다.
사실 이런 비현실적이고 신파 느낌의 로멘스는 너무 지루하고 진부해서 잘 보진 않는데, 이 드라마는 좀 다른것 같다.
특히 남녀 주인공 장면은 한컷 한컷에 더욱 몰입한다.
잘생긴 차진우(정우성)과 다정한 정모은(신현빈)의 기분 좋은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둘의 모습이 요즘에는 흔치 않아 더 소중해 보인다.
날 좀 풀리면 촬영지도 가봐야겠다.
정우성 집(369마실) - 서울 성북구 삼선교로4가실 13-3 한성대입구역3번출구 도보3분
정우성 직장(공근혜갤러리) -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38 광화문역2번출구 도보3분

10화에서 정우성 대사중... 한동안 여운이 많이 남을것 같다.
"""
정말 모든걸 다 잃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가 그린 그림도 내 것이 아니었구나.
이 세상에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위로가 되더라구요.
가족, 청력, 그리고 좋아했던 사람, 뭔가를 자꾸 빼앗기는 거 같아서
오랜 시간동안 참 힘들고 슬펐었거든요.
처음부터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요.
"""

#####

2024/11/2, 1년이 지나서야 가봄.
공근혜 갤러리, 경복궁 북쪽 오른쪽 끝편 모서리에 위치
드라마에선 안에 들어가면 층마다 넓은 전시관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지하1과 2층에 전시관이 있는 작은 갤러리다.
토요일 오후 나 말고 관람객이 2명정도가 있었고 네덜란드 작가 작품 전시 마지막날이었다.

공갤러리에서 북촌,창덕궁,한성대입구역까지 1시간을 넘게 걸었다.
369마실에 오르는길, 돌담벽에 불이 들어오니 운치있다.

369마실에 6시20분쯤 도착했는데 6:30까지만 주문을 받는다고해서 오렌지에이드 한잔하며 잠시 있을 수 있었다.
이곳은 드라마 촬영후 리모델링됐지만 드라마속 그 형태는 유지하고 있는것 같다. 

Pr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