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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thought in library

도서관에서 드는 잡다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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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들기전 인스타 Reels 를 흘겨보는데, 몇가지 찡한 기분 좋은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다.
실사는 아니고 생성형 AI로 그럴사한 풍경을 입힌 짧은 영상인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지니 나도 모르게 빠져 든다. 무한히 반복되는 영상에 심취해 몇분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는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것 같기도 하다.
짧은 영상중에는 빛의 마법사로 불리는 신카이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배경음악과 그 쨍한 색감들이 어울리며 춤을 춘다.
이렇게 짧은 영상으로 멋지게 편집해놓으니 새로운 영화,애니를 보는것 같다. 이런게 매스컴에서 문제라고 말하는 도파민 중독이라는걸까? 뉴스에선 전문가가 안좋은 현상이라고 했었던것 같은데...
그래 예전에는 책은 몰라도 드라마를 한편 한편 챙겨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뻔한 이야기와 억지로 1시간 분량을 맞춘듯한 장면들 때문인지 유튜브에 올라온 드라마 압축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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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빠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책 읽기 습관이 들지 않은 나로서는 정독하며 책 한장 넘기는게 힘들다. 기술 서적을 보면 뭔가 알아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몇번을 반복해도 머리속에서 이해로 소화되지 않으면 더욱 더디고 결국 힘이 빠져 침대에 누워 버린다.
책으로 대표되는 습득 과정은 지난 오랜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스탠다드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교육 받아왔다. 아니 책읽는것은 거의 절대적 선과 같은 느낌이다.
이동진 이 교양 많고 유식한 아저씨가 책은 물과 같다고 했던가? 책을 읽지 않으면 어휘의 확장이 없고 어휘가 적다는건 생각을 제한 한다고 했던것 같다.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안읽어? 책을 읽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유튜브의 어느 젊은 철학자(충코)는 우리가 꼭 책이라는 고전적인 도구가 우리의 정보습득, 지식의 확장 뭐 이런것들을 이루는 절대적인건 아니라고 한다. 나도 이에 동감한다.
디지털 시계만 봤던 미국의 몇몇 어린이들은 아날로그 시계의 시침,분침을 읽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고 하고, 폰과 타블렛으로 길들여진 애들이 터치만 해봐서 연필로 글씨 쓰는것은 물론 키보드도 잘 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 당연할것 같다. 눈으로보고 손가락으로 익히고 어쩌면 작은 미세 근육, 신경들이 훈련하고 뇌에서 우리것으로 만들어 가는 메카니즘인데, 용불용설이다.
그래도 기존의 방법들이 좋아도 앞으로 계속 그럴것이라는 보장은 너무 고정관념 같다. 앞으로는 우리 머리에 외국어,기술등을 USB 10.0 으로 전송하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도 책으로 어휘를 넓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래에는 아마 책장 종이 질감을 느끼는 호르몬도 뇌에 전기 신호로 전달될거다.
즐거운 만화,추리소설 같은게 아니라면 책을 읽는다는건 나와 같은 사람에게 굉장한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가는 운동이다. 우리는 노력이 없으면 그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것 같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 대중을 향해 떠들어 대는 강연이라고 하는것들을 보면 노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내포하고 있다. 요새는 노력에 회의적인 다른 강연들도 많이 올라온다. 우리는 노력했다. 그래도 안되면 노력이 부족했다고 주위의 핀잔을 듣기 일 수 였다.
예전 김제동이 '나라가 살기 좋게 만들어야 줘야 할거 아냐?' 영상과 서장훈이 '즐기는 사람 이길 수없다? 난 죽기살기로 노력했다' 라는 2개를 묶은 유튜브 영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제동은 모든것을 세상탓으로 돌리고, 서장훈은 현실을 즉시하고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 성취한 사람으로 서장훈의 편을 많이 들어준 댓글을 봤다. 난 솔직히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타고난 특성이 거의90%을 차지한다고 본다. 노력도 타고난 재능이라고도 하지 않았나? 노력을 하게끔 하는것도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사람의 DNA 에 달리지 않았을까? 누구는 소극적 누구는 진취적고 심지어 좋아하는 것까지도 DNA로 결정되는것 같다. 선대의 수많은 생명이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은 유전자가 전달되어 우리가 이렇게 머리를 잘쓰는 동물이 된것 처럼... 나같이 키작고 약한 사람이 암만 노력하고 연습한다고 해서 서정훈 같은 피지컬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같이 농구 대결이 가능하지 않은 것 처럼. 공부 잘하는 머리, 운동잘하는 신체등 인정할건 인정해야한다. 서장훈이 조선시대 하인으로 태어났으면 과연 출세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한계에 대해서 부정하고 도어락 시대에 노력이라는 만능키를 들이대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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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AI에 환호하면서 한편으로 AI전쟁이 활발하다. 미국은 빅테크들이 머니파워로 우수 인재와 장비를 독점하며 AI영토를 넓히고 있다. 참고로 우수한 AI인재는 전세계에서 몇백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 연봉을 많이 제시해도 nvidia AI장비가 적은 회사로는 이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와중 국내로 눈을 돌리면 네이버,카카오가 생각난다.(사실 업스테이지, 리벨리온등의 스타트업이 더 뛰어난면도 있다.)
카카오는 많은 엔지니어들이 있지만 기술보다는 외형 확장에만 힘을 쏟아 내가 볼땐 점점 쇠퇴하고 있다. 힘을 하나로 모아 날카로운 송곳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힘없는 형편없는 대장들 명령으로 아래 소대들은 각개 전투를 해서 직원들은 의욕을 잃고 쓰러지거나 탈출한다. 카카오는 쇄신 하겠다고 하는데 최근의 뉴스를 보면 쇄신은 커녕 더욱더 썩어가는 길을 걷는것 같다. 무슨 배짱일까? 내가 6년전에 썼던 '그저 그런 사람이 그저 그런 미래를 만들고 결국 망한다' 는게 딱 들어 맞았다. 앞서 말한 글로벌 기업들의 그루,아키텍트등 소위 최고 기술 권위자라고하는 직책의 사람은 수십억을 받지만 그만큼의 존경과 가치를 만들어 내고있다. 하지만 카카오의 임원급 리더들, CTO등을 보면 솔직히 그냥 그저 그렇다. 잘났으면 구글 갔겠지 하는 생각만 든다. 대표 및 비 기술 임원들의 스톡 행사로 수십업을 버는데 반해 성과는 커녕 오히려 회사에 해만 되고 있는데 왜 대우를 해주는지 모르겠다. 카카오 보다는 나은 네이버도 발버둥을 치지만 쉽지 않은데, 카카오는 정말 어쩌려고 그러는지 에효.

드라마 - 사랑한다고 말해줘

'사랑한다고 말해줘' 요즘 챙겨보는 잔잔한 힐링 드라마다.
재방송이 나오면 또 보고, 와 요즘 이렇게 보는 드라마가 없었는데 간만해 빠져 든다.
사실 이런 비현실적이고 신파 느낌의 로멘스는 너무 지루하고 진부해서 잘 보진 않는데, 이 드라마는 좀 다른것 같다.
특히 남녀 주인공 장면은 한컷 한컷에 더욱 몰입한다.
잘생긴 차진우(정우성)과 다정한 정모은(신현빈)의 기분 좋은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둘의 모습이 요즘에는 흔치 않아 더 소중해 보인다.
날 좀 풀리면 촬영지도 가봐야겠다.
정우성 집(369마실) - 서울 성북구 삼선교로4가실 13-3 한성대입구역3번출구 도보3분
정우성 직장(공근혜갤러리) -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38 광화문역2번출구 도보3분

10화에서 정우성 대사중... 한동안 여운이 많이 남을것 같다.
"""
정말 모든걸 다 잃었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가 그린 그림도 내 것이 아니었구나.
이 세상에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위로가 되더라구요.
가족, 청력, 그리고 좋아했던 사람, 뭔가를 자꾸 빼앗기는 거 같아서
오랜 시간동안 참 힘들고 슬펐었거든요.
처음부터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요.
"""

anxiety and my cosmos

불안은 두뇌 해마(hippocampus)의 앞 부분 편도체(amygdala)가 보내는 알림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일에 대해 위험하다고 조심하라고 해주는 역할인데, 이게 사람에 따라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손에 작은 상처를 보고 세균에 감염돼 손가락이 썩어 들어갈수도 있으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뇌의 이성적 판단으로 보면 이런 작은 상처는 괜찮다고 해야 한다.
결국 이 편도체의 과민한 알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대뇌의 이성적 판단으로 컨트롤해야 한다.
힘들면 세라토닌 같은 약물의 힘을 빌려도 된다.
우리는 아니 나는 불안해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알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난 앞으로 이렇게 될거야, 크게 위험한 일은 없을거야,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그렇게 평탄하지 만은 않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많이 느낀다.
어쩌면 불확실성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 세상이 아니 정확히는 이 나라가 그나마 치안도 좋고 총칼로 당장 내일의 목숨을 걱정하지는 않아서 불안,걱정 이런것들이 잘 없어야 할것 같은데..
대신 비교,경쟁,돈 뭐 비 물리적 이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곤하고 폭력적인 위험 요소들이 크게 차지하는것 같다.
우리는 경쟁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이 경쟁속에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동적으로 비교하면서 내가 못나 보이는 불쾌한 감정을 찌릿하게 느낀다.
난 괜찮아 그래 지금도 좋아 하는 생각으로 이 불쾌함을 덮으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 요새 난 이런 경쟁과 비교에 대한 두려움, 걱정이 불안으로 자라고 있는것 같다.
급격히 발전하는 AI는 나의 직업을 위협하는것 같고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면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지 다른 아이들 처럼 학원을 더 많이 다녀야 얘가 나중에 뭐라고 해서 먹고 살지 않을까하는 불안함, 솔직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불안 들의 원인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날려보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들이나 약으로 치료하는 의사들의 방법은 효과가 있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불안은 나의 일부가 아닌가? 나는 오로지 순수한 밝은 에너지로 채워져야 하는가? 마치 이물질 하나 없는 투명한 물처럼,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결처럼 그런 사람이어야 되는가?
우리는 모두 그럴수 없다. 잘안다. 때로는 잘못을 했고 그 잘못의 무게가 작고 크고를 떠나 우리는 어쩌면 태어난 순간 부터 탁해 질수 밖에 없는 물처럼 다시는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인것 같다.
부처같은 성인이나 이런 사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꼭 사념을 버리고 자유로워야 하는가?
우리는 목적이 있나? 잘먹고 잘사는 그런거 말고, 애초부터 자의가 아닌 생명체로 태어나 필멸의 존재로서 우리는 왜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걸까?
어떤 미스터리 채널 에서는 인간들은 죽어서 우주의 절대적인 유일무이 신의 파편이고 죽으면서 생에 쌓았던 경험을 가지고 신의 일부로 돌아간다고 한다.
뭐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주에 비하면 너무 찰나의 순간에 이 작은 생명체가 어쩌면 견딜 수 없는 절망적인 사건들을 경험하게 하는지 신이 있다면 아니면 지금이 시뮬레이션되는 세상이라면 그 신 그 관리자에게 좀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기도,부탁한다.
절대적인 거부할 수 없는 결정론도 생각해보자.
사실 난 이 결정적 우주에 더 끌린다. 경험으로 추론하건데 나에겐 이 세상은 내가 어쩔 수 있는게 아니라 이미 이렇게 저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신의 깊은 뜻이든, 장난이든, 피조물로 의식을 가진 독립된 자아로 생각되지만 크게 보면 작은 부품처럼 딱 그자리에서 이미 결정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로 보인다.
어릴적에는 노력,착함,성실 이런 것들을 교과서처럼 몸에 익혀야 했고 이것이 진리는 아닐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잘 사는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주입되어 왔다.
그런데 왠걸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알지도 못한 지구의 이곳 저곳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이제 자신있게 재능,환경 이런 태어나면서 부터 갖춰지는 것으로 인생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자는 영양 무리에서 힘없고 뒤쳐진 녀석 하나만 노려 사냥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신체능력이 좋은 영양의 유전자만 다음 세대로 남을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자연의 경쟁이 인간 사회에서는 재능,환경 이런것들로 무대만 바뀌었을 뿐 그 본질은 같다.
공부할 머리가 아닌데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고, 결국 머리 좋고 좋은 부자집 친구에게 경쟁에서 뒤쳐질 운명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사회는 부정한다.
이런 현실에 분노하고 어쩔 수 없음에 좌절하고 이로 인한 불투명한 미래의 두려움으로 지금의 불안함을 키우고 있는것 같다.
매일 경제, 정치 뉴스를 보면서 행복한 미래 보다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 혼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외롭고 치열한 두뇌의 전기 신호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스트레스가 된다.

autumn 2023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2023년도 가을과 마주한다.
매일 걷는 동네길이 노랗고 빨간 그 강렬한 색으로 날 매료시킨다.
평소에 감흥없던 장소도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게 만드는 계절이다.
 

 

준영이 학교에서 동네 가을 체험 숙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도 거닐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경치를 보며 가을을 소소하게나마 즐겼을텐데, 올해부터는 그게 쉽지 않다.
가는 곳마다 행복했던 추억들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데, 지금의 나와 비교되고 결국 후회,아쉬움,그림움 뭐 이런 감정들도 가득차 버린다.
올 가을은 그 어느때 보다 쓸쓸하고 외롭고... 힘들다.
내년 가을에는 조금 덜 힘들고 행복해보자~

good night my kid

준영이의 주말은 아이패드와 함께하는 집돌이 모드의 시작이다.
예전 축구가 좋아 축구학원도 열심히 다녔는데, 이제 집에서 아이패드 하는걸 젤 좋아한다.
난 어느새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쥐어주고 옆에 같이 누워 폰을 만지작 거린다.
아이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낄낄 웃고, 점심으로 토스트와 꽈배기를 먹는다.
밖에 나가 축구할래? 라고 물어보면 단호히 아니 그냥 집에 있는 다고 한다.
그렇게 오후를 집에서 보내고 잠깐 백화점으로 외출하면 요즘 좋아하는 신비아파트 책을 한권 사고 바로 컴백홈.
그리고 다시 아이패드를 켜고 늦은밤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는다.
지금 침대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요 녀석 잠든 뒷모습을 보면 고된 노동으로 피곤한 사람 같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코를 골고 안경을 쓴채 잠들었다.
안경을 벗기고 제대로 눕히려고 몸을 안고 들려고 하는데 들수가 없네? 언제 이렇게 무거워진거야.
오늘 하루 아이에게 내가 뭘 해줬지? 너무 방치하는게 아닌지 미안한 맘이 든다.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고 내 안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냥 지금은... 당분간은... 이렇게 아이랑 널부러진 시간을 보내고 싶다.
준영아 좋은 꿈꿔~

hesitate travel

여행을 가려고 했다.
뭔가 상쾌한 바람을 쇄듯 여행을 가면 마음이 홀가분해질것 같았다.
보통 직장인들이 그렇게 여행을 가니까.
나도 그러면 되겠지 했던것 같다.
막상 여권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여행을 가지 않고 있다.
시간도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왜?
산책을 하다 어떤 유튜브가 여행을 꼬집는 말을 했다.
여행으로 견문을 넓혀? 그냥 돈지랄이지..
뭐 이런 내용이었던것 같다.
여기에 백퍼 공감은 아닌데 뚜렷한 목적없이 의미없이 마냥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앞선건 사실이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딜가지? 혼자 거기서 무얼 할까? 내가 바랬던건 뭘까?
아니면 복잡한 생각들을 비우기위해?
솔직히 일상에서 벗어나 유랑을 하면 좋을것 같았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난 집돌이(homebody)다.
뭐가 부러워서 해외로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걸까?
캐나다, 북유럽 그 멋진 장관을 느끼고 싶다는건 예전 부터 있었지만 그게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걸까?
그렇게 나홀로 떠나면 그곳에 가서도 편할까?
돈을 많이 쓰면서 집에서 아빠 없이 있을 준영이를 생각하니 맘이 편치 않을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행이 또 두려워 지네.
아빠하고 손흥민 축구 보러 영국가자고,
그러려면 영어 열심히해야 한다고 꼬득이고 있는데,
이 녀석은 아 그래?  알았어. 시크하게 받아넘긴다.
이렇게 장한 녀석과 같이 떠나고 싶은데 아직 쉽지 않다.
조만간 이런 두려운 생각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은 뭐 계획한건 하나도 제대로 되는게 없구나.
여행도 그중 하나가 되는것 같다.
계획했던 시간은 지나고 있고 여행이 귀찮은 숙제처럼 느껴진다.
불과 몇달 전의 맘과 지금이 이렇게나 다르니,
내 맘도 줏대없이 흔들거리는 갈대같구나.(갈대 좋지 뭐~)

tune my brain

Bach Brandeburg Concerto No.4 BWV 1049 (Jean Pierre Rampal / Karl Münchinger)
Flute: JEAN PIERRE RAMPAL
Flute: Catherine Cantin
Violin: Herwig Zack
Harpichord: Martin Galling
Conductor: Karl Münchinger
Stuttgart Chamber Orchestra (Stuttgarter Kammerorchester)
Théâtre des Champs-Élysées in Paris (April 1985)

당시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인지 몰랐다.
어렸을때 저녁 방송전 화면 조정시간에 자주 나왔던 친숙한 선율~
뭔가 준비하는 듯한... 정말 화면 조정을 하는 시간으로 내게 각인돼서 일까?
아니면 바흐 그 특유의 정직하고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인 패턴 때문일까?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 진다.
목관 악기인 플룻으로 바로크 시대 풍으로 연주한 영상도 있는데,
고인이된 장 피에르 랑팔이라 그런지 이 연주가 좀더 와 닿는다.
1985년 영상이라 그런지 복고풍(retro)의 부드럽고 따듯한 느낌이 좋다.
중간에 들리는 청중의 기침 소리도 왠지 아날로그 감성이 물신난다.
요새 출근 버스안에서 보통 드라마를 보거나 팝송을 듣는데,
어제 오늘은 이 영상을 틀어 놓고 눈을 감는다.
잠도 스르륵 들고 긴장이 풀어진다.
클래식을 들으면 잠이 오고 지루해서 금새 채널을 돌리는데
가끔 이렇게 듣고 있으면 뇌를 디톡스 하는 기분이 든다.
스트레스로 이런저런 신경쓸일들로 머리속이 엉킨 실타래가 될때면
컴퓨터처럼 reset, initialize... 하고 새로 부팅하고 싶어진다.
기계처럼 새로 시작할 수도 없는데 풀리지 않은 기억들로 머리속에 자국이 남고 쉽게 아물지 않는다.
이럴때 이런 음악이 작은 진통제가 되고 마음을 진정시켜 엉킨 실타래를 다시 풀 수 있도록 멘탈을 잡아 주는것 같다.
화면 조정처럼 내 머리속을 정리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Mulder and Scully


90년대 내 외화의 중심을 차지한 x-files mulder and scully, 이제 드라마속 이들 보다 나이가 많은 내게 다시 찾아왔다.
자막없이 영어 듣기를 하고 싶어 요즘 Disney+ 에서 보고 있다.
역시 좋아하는 드라마라 틈날때 마다 잘 보게 된다. 아직 집중해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영상과 예전 기억으로 대충 어떤 얘기인지 추측이 가능하다~ㅋ

막 중학생이 됐을 때였나? 토요일 11시에 방영 됐던것 같은데...
밤 늦게 TV 보면 꾸중을 들을것 같아 불을 끄고 몰래 봤던 기억이 난다.
시작할때 나오는 그 요상한 테마음은 마치 UFO 가 비행하고 있을것 같은 분위기를 냈다.
각화 마다 미스테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미국의 여기저기로 조사를 다니는 이 커플이 멋져 보였다.

어렸을때 멋진 형, 누나 같아 보였는데, 20년이 넘은 후에 이렇게 보니 주름없이 풋풋한 얼굴이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저렇게 정장을 입고 근사한 FBI 요원이 되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도 부럽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미국의 소도시의 중산층의 모습과 배경으로 보이는 대자연이 나도 한번 저런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때부터 침엽수가 높게 자란 숲속의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고 또 걷고 싶어했던 마음이 생겼던것 같다.
슈트와 FBI 신분증 그리고 권총, 이런것들 대신 헐렁한 티와 운동화에 백팩에는 맥북을 넣고 북미를 여행하는 기분은 어떨까?
뭘 망설여? just do it!

cleaning emotion

웃을 일이 거의 없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게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나만의 동굴로 돌아오면 편해서일까 어두운 그림자는 내 표정을 덮는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 그 파편들은 여기저기 몸에 박혀 피를 흘리고 있는데,
안 아프다고 진통제를 꿀꺽 삼키며 괜찮을거라고 최면을 건다.

이게 뭐야? 어쩔 수 없어. 지금은 이렇게 버티는 수 밖에.
어딜가도 공허함이 함께하고 밤이나 낮이나 잔뜩 움크리고 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그 무게감.
그 허망,슬픔,고통으로 딱딱하게 굳은 돌덩어리가 벼랑끝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려.
괜찮다, 잘하고있어,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거름으로 뚜벅뚜벅 하루를 살고 있어.
그런데 이 기분 좋은 바람에 혼자 옛 추억으로 가득한 거리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순간 멍해져.
뭐가 잘못돼서 이렇게 된걸까? 이런 의문은 아직 내머리속에서 답답함을 더해가고,
어쩌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일때면 나도 무서워지곤 해.

모든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도, 좋아질거라는 작은 확률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나를 지탱하는 소중이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시간이 갈수록 나와 같은 고통에 힘겨워지는건 아닐까?
이런 인생이 될거라고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비극도 3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문학이지만 당사자가 되면 그때부턴 안드로메다로 간다.

휴~ 잔뜩 우울한 감정을 털어 놓고 있네.
차분한 음악을 듣고 안정을 바랬지만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튀어 나왔다.
이렇게 주저리 적고 있으니 맘의 쓰레기를 하나둘씩 치우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치워야 할 숯덩이들이 잔뜩 쌓여 있겠지? 치워도 치워도 계속 쌓이는 먼지 같겠지.
별 수 있나? 매일 나쁜 감정 청소 열심히 해야지.
매일이 힘들면 가끔이라도 내 작은 다락방에서 이렇게 주저리 털어 내보자.

happiness and regrets

맛난 옥수수, 여름이면 꼭 먹게 되는 옥수수
막 삶은 탱글탱글한 하얀 찰옥수수를 한입 물어 씹으면 쫀득한게 입 속에서 알갱이들이 톡톡 튀어나오는게 또다른 재미다.
하루 종일 옥수수를 먹으면 질릴만도 한데, 다음날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다.
누워서도 유튜브 보며 잘근잘근 씹는 옥수수는 스트레스도 날려준다.
어디서 들었는데 옥수수, 고구마는 쌀보다 식이섬유가 많은 좋은 탄수화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 맘 놓고 먹게된다. 배가 빵빵해서야 후회를 하긴 하지만...
지금 막 찐득해진 손을 씻고 이렇게 키보드로 옥수수에 대한 생각을 쓰는게 뭔 쌩뚱함인가..

그래 옥수수 먹는게 기분이 좋거든, 요즘은 아침마다 산책에 농구까지 한다.
그래 이것도 그 순간순간 기분이 좋다.
빨리 걸어 땀이 송글 맺히고 목을 타고 흐르는데도 기분이 좋다.
헥헥 거리며 농구공을 튕기고 슛~ 그리고 골망속으로 깔끔하게 들어갈때 그 소리가 짜릿하다.
그렇게 들어가지 않던 슛이 한번 들어가면 그 쾌감이 왜 이렇게 좋을까?
옥수수에서 산책 그리고 농구까지 요즘 소소한 행복을 주는 것들이다.
행복은 일상에서 작지만 빈번하게 겪어야 한다.
큰 목표를 세우고 큰 행복만 추구하면 인간은 버티질 못하고 포기한다.
작지만 계속 찾아오는 행복감이 나의 에너지다.

뭐가 그렇게 되고 싶었을까? 뭘 그렇게 갈망했을까?
과거의 내가 추구했던 목표들이 나에게 짐이 되고 있었던건 아니였을까?
오늘은 조금 참고 내일의 나에게 행복을 넘겨준다고 생각했던건 아닐까?
그땐 방안에 홀로 영화를 보며 함께먹는 새우깡이면 충분한 행복이라고 자부했던것 같다.
이것도 좋긴한데 조금 더 나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행복한 선택들을 할순 없었을까하는 후회가 든다.
후회라... 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후회는 항상 뒤에 남아 있다.
후회를 탓하지말고 완벽히 없애려 너무 애쓰진 말자. 이 또한 후회가 될테니까. 후회를 보고 배우고 나아지면 되잖아.
오늘은 행복과 후회라는 감정사이에서 오락가락 흔들리는 맘에 주저리 써본다.

장소의 냄새

맛난 음식 냄새를 맡으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것 처럼 시간과 장소에도 냄새가 있는것 같다.
유년시절의 고향은 대부분의 면적이 논과 밭인 전형적인 한국 농촌의 모습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하교 후나 주말에 밭,비닐하우스에서 부모님 일손을 돕는 애들도 많았다.
가끔 내가 태어난 이곳에 오면 겉으로는 변한게 크게 없어 보이지만 어른들은 주름이 좀더 늘었고, 점점 사람들 구경이 쉽지 않는 동네가 되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작은 도시가 더 썰렁하게 느껴진다.
많은 편의시설이 갖춰지고, 뭔가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것들을 많이 시도하는데 사람들은 이 동네를 떠나고 있다.
그래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공간이다.
아직 친한 친구 몇명이 있고, 가끔 명절이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찾게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변해가는 지형들 그리고 이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런것들 때문인지 가끔 이 익숙한 동네가 낯선 공간으로 보일때가 있다.
그래도 내가 할머니,할아버지,삼촌,고모와 같이 대가족으로 지냈던 집은 아직 그자리에 있다.
이제 이 집도 삼촌 혼자 있지만, 가끔 가족들이 모이는 집합 장소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고등학교때 방으로 쓰던 곳에서 이렇게 글을 끄적인다.
2023년 여름에 몇일간의 쉼을 다시 이곳 이방에서 시작한다.
아 그때는 친구들 불러 모아 가요며, 팝송이며 음악을 틀고 뭔 잡담을 그렇게 했는지...
이 방은 각종 쓰지 않은 물건들로 꽉찬 창고처럼 변했지만
책상위 수북히 쌓인 짐을 정리하고 먼지를 몇번이고 닦아낸후 이렇게 맥북을 올려두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오래된 책상 위 신박한 미래 장치가 떡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이 작은 동네, 이 집, 그리고 짧지만 나만의 공간이던 이방, 이곳에서 많은 꿈과 공상으로 앞으로의 내 아름다운 인생을 그렸던것 같다.
그저 팝송과 애니 그리고 빠질 수 없는 PC 로 이 방은 풍족했다.
이것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해준 행복들이었다.
예전의 방과 다르게 이젠 저기 천장에 거미줄이, 그리고 그 밑에 떨어진 곤충의 사체도 보이고 하도 청소를 하지 않아서 여기저지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니지만 방금 정리한 책상에서 다시 뭔가를 꿈꾸고 싶다.
마치 가능성으로 가득찬 10대의 내가 된 기분을 아주 살짝 스쳐가듯이 느낀다.
이방에서 이 글을 쓰는게 뭐라고 이렇게 나를 들뜨게 만드는걸까?
왜냐면 이곳의 냄새는 아직 뭘 모르는 순진한 10대의 나를,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재밌어 하는 내 웃는 모습을,
그리고 언제가는 만날 내 꿈과 사랑을 기대하는 나를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

2023년 7월의 시작

장마는 내가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것 같다.
쨍한 햇빛과 습한 온기로 가득찬 지구는 커다란 가마솥이 되어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것 같다.
여러 일들로 내맘은 뒤숭숭 한데 2023년 7월은 이렇게 폭염으로 시작 했다.
나도 이 열기에는 뛰기를 포기하고 걷지만 이마저도 숨을 헐떡인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살을 빼야 하는데, 여행을 가야 하는데,
나름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이 모든것들을 실현하고 싶지만
이 여름의 난폭한 성질 또한 이 모든것을 녹여 내리는것 같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있는 사무실로 카페로 대피해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 한스푼으로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히힛 달다 달어~^^;
하지만 금새 사라진 아이스크림을 두고 아쉬움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달콤한 시간은 한 더위 아이스크림 처럼 그 형태를 유지를 길에 가져가지 못하는것 같다.
다 녹아 없어지기전에 이가 시려도 차라리 크게 한입 베어 무는게 좋은 전략 같기도 하다.

이제 해가 저물기 기다리며, 유튜브에서 빗소리와 함께하는 수면음악 듣는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섞여 들려오는 달콤한 비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그런데 제목과 달리 동영상의 소녀는 뭔 걱정이 있는지 늦은 밤 빗소리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것 같다.


낼은 비가 온다고 하는데, 아침 운동부터 습기 때문에 짜증이 날것 같아 걱정이다.
그래도 달리고 나서 샤워할때를 상쾌 하잖아~^^;

사무실에서 끄적인다.

사무실에서 끄적인다.
사무실의 적막함에 에어콘도 금새 소리를 죽인다.
이런 환경에서 줄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이렇게 타자를 두드리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뭘까? 이 변태적인 갬성은...
그동안 끄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많이 끄적일 것 같다.
그냥 생각가는데로 필터링되지 않은 생각들을 적어 기록하고 싶은 고요한 사무실 분위기다.
듣고 있는 노래는 외로움을 달래주지 않고 그에 쓸쓸함을 더한다.
여름이라도 쾌적한 이 공간에서는 따뜻한 레몬차가 잘 어울린다.
가끔 상단에 표시되는 알림은 나를 힐끔 처다 보고 획 숨어 버린다.
뭐야? 나 뭐하는지 염탐 하는 것 같은 느낌~ㅋ
밖은 컴컴하고 안은 훤하고 이 대비는 나를 안전한 위치를 확인해 주는것 같다.
이렇게 남아서 뻘짓 글을 쓰는 여유로움도 이 시간, 이 공기가 만나야 할 수 있다.
이것도 지치면 못해, 건강하니까 이런 잡 생각들을 쏟아 낼 수 있는게 아닐까?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공간이 왜 이렇게 편안할까?
집에서 누워 유튜브 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자신만의 갬성에 묻혀 폼 잡는 것도 좋다.
컴퓨터는 참 오랜친구다.
초딩때 본 컴퓨터는 화면에 깜박이는 녹색바는 막 세상에 태어난 애기처럼 해맑은 눈같았다.
나도 신기해서 쳐다보면서 많은 밤을 함께 게임 실행을 위해 엔터를 칠때는 쾌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던것 같다.
비록 게임하는 목적은 아니지만 이런 글을 쓸때까지 나도 컴퓨터도 그 모습이 변해 갔지만 그 알 수 없는 프렌드쉽은 계속 되고 있다.
아직 집에 갈 시간은 아니다. 왜? 이 감성을 더 끌고 싶거든...
지금 듣는 오래된 노래는 내 어릴적 집 방구석에서 어둡게 커텐 치고 LP 로 가요를 들었던 때를 갑자기 생각나게 한다.
이제 여름이 막 들어서는데 이 외로움은 뭘까?
이 갬성은 가을에 더 잘 어울리는데... 왜 지금 뛰쳐 나오고 그래?
그래 그럴만두 하지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은 아니겠지...
당분간 내게는 그 외롭고 쓸쓸한 가을 계속되겠지...
가을 제일 좋아하는데...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낼도 여기 아침일찍 올텐데, 그리고 또 늦게 이렇게 있을 텐데,... 낼도 이렇게 끄적일 수 있을까?
좀 더 있고 싶지만 우측 상단의 시계는 그만 집에 가서 발닦고 잠이나 자라고 하는것 같다~
그래 퇴근 한다~

나 업그레이드 하기

거참... 인생 쉽지 않네.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그 사람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은 당황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안좋은 일은 연속해서 찾아 온다고 했던가? 슬픔,분노가 밀어 닥치는데 생전 처음 겪는 상황들은 나를 내가 아니게 만든다.
그래도 살만큼 산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하는가 보다.
몇 달을 슬픔,고마움,미움,그리움... 온갖 감정을 오가며 시달리고 이제 좀 일어서려고 하니 또 다른 큰 골치거리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네?
최소한 견고한 성에서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멋져 보이던 성이 모래성으로 변해버렸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모래성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이 무너져 가는걸 보고, 어떤 이들은 빨리 성을 뛰쳐나가고 있지만, 난 그냥 "아~ 성 무너지네 어떻게 하지?" 하고 다른 사람들 행동을 보며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그래 뭐 어떻게 되겠지... 이거 너무 안일한거지? 그런거지? 그래 내 살길을 빨리 찾아야지.
주위에서도 도망쳐라고 하는데 난 왜이리 맘이 편할까? 득도 했나?ㅋ
그래 앞선 슬픈일에 비하면 그깟 모래성이 어떻게 되던 난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이 자신감은 뭘까?
경험은 무섭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몇 달을 앓다 살아나면 왠만한 감기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나의 두려움,공포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이제 왠만 하지 않으면 피식 웃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된것 같다. 
차근차근 나를 견고하게 다져보자. 더 재밌고 행복하게 살아보자.
울고 싶으면 울고 힘들면 쉬고 그러면서도 이 아름답고 멋진 내 생을 만들어 보자. 홧팅!

experience 라 쓰고 삽질이라 읽는다.

프로그래머(개발자)가 일을 할때 삽질했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삽질이라는 말이 포크레인으로 한번에 처리할 일을 힘들게 땅만 팠다는 뉘앙스로
잘 모르는 영역을 힘들게 이것저것 시도해보거나,
원인 파악이 잘 안되는 일(버그같은)들을 처리하기 위해 힘들었다는 의미로 쓰인다.

흠, 자기가 힘들게 일했다는것을 빗대 말하면 듣는 사람에게 확 와닿기 때문일까?
IT 업계가 다른 공학분야 특히 건축분야의 용어를 많이 빌려 쓰는것 같은데, 삽질도 그렇게 공사현장을 연상시킨다.
많은 개발자들이 삽질을 했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생각이 난다.

첫번째 진짜 힘들게 일했다.
두번째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번째 experience 라 쓰고 삽질이라 읽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삽질이라고 말하지만 경력사항에는 experience(경험)이라고 쓸 수 있다.

삽질이 너무 입에 붙어 쉽게 고칠 수 없는게 아쉽지만,
이 힘든 삽질이 나의 커리어라는 나무에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음도 잊지 말자.

지금 시점에 생각해볼 AI 미래

AI 직군에 3년간 몸담았던 기술자사 쓴 글인데, 오랫만에 정독해 봤다.


글을 보면 10년동안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는 AI에 대해서, 영화에서 나올 법한 그런 막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이 당분간 없을 것이고, 뭐든 가능할것 같은 인공지능에 매료돼 발을 들였던 필자는 현 시점에서 인공지능의 한계를 느끼고 약간 회의적이다.
그래, 언제부터인가 인공지능, ML(machine learning) 이라는 단어가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고, 좀 더 나가 이제는 AI 가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들 한다.
나도 이 말에 90%는 공감을 했지만 뭔가 깨름직한 10%가 항상 남아 있었는데, 그부분을 위 글에서 잘 설명해주는것 같다.
비록 실력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 관련 학위를 받고, 관련 업에 수년간 일한 나에게 옛날의 추억과 슬픔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 메이저가된 DL(Deep learning)이 아닌 다른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나에게는 DL(사실 neural network)로 뭔가 성과를 내지 못했던것 같아 아쉬웠고, 가끔 AI 업을 다시 해보고 싶은 맘도 들게 했다.
그런데 이미 10년째 인기를 얻고 있고 많은 개발자들이 AI 일을 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2012년 힌트 교수가 몰고 온 신선한 충격 이벤트는, 글쎄 무덤덤해 진것일 수도 있는데, 점점 줄어 들고 있는것 같다.
마치 인터넷을 누구나 사용하는것 처럼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큰 장벽없이 누구나 쉽게 AI 개발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겠지? 그런데 지금처럼 관련 종사자들의 높은 몸값이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사족) 이런 뭔가 대세(major)와 반대되는 minor 생각들이 때론 거부감이 들지만, 적은 확률일지라도 좋은 진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돌연변이 느낌이 든다.

눈물 글썽이게 만드는 귀멸의 칼날

나루토,원피스 이후 끝까지 보고 싶어진 애니 귀멸의 칼날,
시즌1 이후 이어진 극장판 '무한열차'는 정의로운 렌고쿠 모습이 담겼다.
꼭 나루토의 가이를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다.
애니보고 눈물 나는게 얼마만인지...ㅠㅠ

렌고쿠의 회상신 중 어머니 말씀...
"
어째서 자신이 남들보다도 강하게 태어났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약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나면서부터, 남들보다도 커다란 재능의 은혜를 지닌 사람은
그 힘을 세상을 위해 남들을 위해 써야만 한답니다.
하늘께서 베풀어주신 힘으로 남들을 상처입히는 일,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답니다.
약한 이들을 돕는 것은 강하게 태어난 자의 책무입니다.
책임을 지고 이루어야만 하는 사명인 것이지요.
한사코 잊지 않도록 하세요.
"
렌고쿠왈: "네!!!"

아.. 왜 이 말이 그토록 빛나면서 무거워 보일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기에 렌고쿠의 정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직장인 넋두리

마음은 한동한 싱숭생숭하다 곧 화가났고 이제 현타가 온다.
매년 2월이 되면 직장인들의 연봉협상 결과가 속속 통보된다. 협상이라는 말은 왜 쓰는지 모르겠다.
지금 회사도 벌써 5년째가 되는데, 매년 그렇듯 올해 역시 연봉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보통 이직 첫해는 이직했을때 올려받은 연봉등의 이익이 있어 좋기도 하지만 업무도 잘 모르고 배우는 입장이라 평가도 가장 낮고 보상도 거의 없을거라 생각한다.
2년째부터 조금씩 인정 받고 그에 따른 보상도 조금씩 오르길 바라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 회사가 밖에서 보기에 평판도 좋고 구직자들에게 어쩌면 꿈의 직장으로 까지 그려지는 걸 보고 있으면 무슨 배부른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몇년동안 평가는 복잡해지고 많아졌지만 그에 따른 보상 결과는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속에도 나름 그래도 괜찮게 받고 있었나 싶었는데, 최근 IT 직장들의 보상관련 뉴스나 블라인드에 뜨는 글을 보고 있으면 그게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는 얼마를 올려줬네, 어디는 어떤 보너스를 주네 하면서 코로나로 매출이 증대하고 앞으로 커갈 회사들이 하나둘 개발자들 처우와 채용에 불을 붙였다.
이런 와중 내 회사는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일도 손해 잡히지 않았다.
사람이라는게 어떻게 이렇게 간사하고 욕심쟁이냐고 속으로 말해보지만 좀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히 내 권리를 찾아가는게 뭐가 잘못되었냐는 대답이 온다.
직원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커가고 대표에게도 호소해봤지만 대표들의 임금이 커가는 것에 비해 직원들의 보상은 사업확장과 미래 비전을 위한 투자로 지금은 여력이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솔직히 자본주의 시장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임원들이 맘대로 하는것에 크게 반할 수 있는 힘은 일반 직원들에겐 없다.
그나마 노조를 결성해 대항해보지만 특히 IT 업계에선 사람들 성향때문인지 그렇게 똘똘 뭉치지도 못하고 대표를 몰아부칠만한 날카로움도 없는것 같다.
뭐 이런 상황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40대가 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내 인생의 반은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맘이 든다.
좀더 높은 임금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이 회사에서는 삶의 질이 높지는 않더라도 당분간 꽤 평탄한 길을 걸을것 같지만 점점 안좋아질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표나 임원들의 대답을 듣고 있으면 뭔가 사업을 벌리고 있고 그에 따른 성과도 조금은 있어 보이지만 여러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사업들에 투자로 돈이 모이질 않고 뭔가 회사가 외형만 뻥튀기 되는것 같다.
이런 뻥튀기에 지분을 소유한 임원들은 그들의 몫을 톡톡히 챙기고 있고, 일반 직원들의 보상은 점점 줄어간다.
사업을 늘리고 있으니 사람은 많이 뽑을테고 그로 인해 내 몫을 점점 줄어들테고,
무엇보다 이 회사의 비전이라고 말하는것들은 죄다 기술을 소유한 인력들에 의해 움직이는것들인데,
글세 몇몇 핵심인력들에 대해서는 아주 후한 보상이 주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새로운 도전 회사들에 비해 임금이라던지 기타 메리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과연 이런 보상체계에서 직원들은 일할 의욕이 얼마나 생길것이며 얼마나 이직없이 계속 머무를 수 있게 할까?
능력있으면 이직하고 아니면 박봉이라도 이 자리에 머물려고 할테고, 뭐 각자 상황에 따라 처신을 하겠지만은 한가지 분명한것은 경쟁회사보다 못한 보상이라면 좋은 인재는 사라지고 점점 쇄락의 길로 접어들게 뻔한다.
밖에서 보는 이 회사는 앞날이 창창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라고 말하지만 내가 볼때는 그 알맹이는 점점 썩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더 부각되고 그로 인해 IT 수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겉으로는 매출이 증가하고 앞으로도 발전 할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IT 회사가 그렇지 않을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기존 제조,유통,금융,엔터테인먼트등도 IT 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기존의 IT 대기업들이 탄탄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덩치가 커진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생각의 속도도 초기처럼 빛나지 못하는것 같다.
개인적으로 앞날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그저 그런 생각들로 움직이는 회사는 크던 작던 빨리 망해야 한다.
그래야 본보기가 되고 인재들은 새로운 회사로 흡수돼 더 좋은 회사들을 만든다.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서론이 길었다.
자 이제 나는 뭘해야 될까? 그래 이직, 이직을 해야지.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링크드인에 그동안 회사에서 한일을 써보면서 내가 뭐 그리 특별한 능력이 있나 다른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다. 그동안 회사 일만 하면 되고 자기 발전에 크게 신경쓰지 못했던것이 새삼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지금 뭔가 시작하자고 하니 앞서 연봉 결과로 한동안 집중도 않되고 힘도 빠질것 같다.

천천히 맛있게 습득하기



영어 공부를 하는 방법(공부라는 단어에 상당히 반감이 있다.)
항상 많이 듣고 많이 말하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힘든 고행이다.
예전에는 테이프가 늘어질때까지 들어야 한다고~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듣고 입술이 마를정도로 말해야 한다고.

듣고 따라 말하고 계속 연습하는게 최선의 방법이라고들 알고 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냥 내 머리를 통과하고 남는게 없더라.

물론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때 지속적인 연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악기를 배울때 도레미 그 음을 건반을 누르고 운지를 집는 등의 연습은 운동선수가 몸을 쓰는 방법과 비슷할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이해, 내가 알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능숙한 강사가 아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하더라도 내가 모르면 그 강의는 내게 남지 않는다.

이건 마치 음식을 소화 시키는것과 같다.
맛있고 비싼 고기가 있는데 평소 고기를 먹지 않는 나로서는 비싸고 아까워서 억지로 입속어 넣어 30번은 씹어야 하는 메뉴얼대로 입을 움직이고 꿀꺽 삼키는 과정을 수행하지만 얼마 안가 위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면서 가스가 차오른다.
이런게 정말 맛난 음식을 먹고 행복을 느낀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에 대한 영상은 많다.
학원 강의, 전화 영화, 화상영어 등 많지만 난 그 무엇도 꾸준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쉽게 포기 하는 자신을 많이 자책했다.
선생님은 열심히 잘 가르치는것 같은데 내가 못알아 먹는다고, 하지만 그럴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은 나를 더 위축시키고 언어 습득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중요한건 내가 음식을 천천히 그리고 맛있게 먹고 편하게 소화 시킬 수 있냐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영어를 배웠던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건 쉽고 단순한 문장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어를 머리속에 만들어야 한다.

2020년의 장마는 미지근하게 시작됐다.

2020년 장마는 미지근하게 시작됐다.
몇일 폭염이 지나고 비가 찔끔 찔끔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진짜 비라고 할 만한 것들이 쏟아진다.

뭐 장마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물폭탄은 아직 없다.
어릴적 장마에 대한 추억은 여기저기 산사태로 쓸려 내려온 토사로 하수구가 막히고, 금새 동네가 종아리까지 잠길만큼의 작은 흙탕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걸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에선 보기 힘들다.

가끔 하천이 넘칠것 같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ㅋ
여름은 후덥한 그 느낌이 멀쩡한 사람을 흉폭하게 만든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 모두 잘못 건드리면 금새 폭발할것 같은 지뢰들 처럼 보인다.
이런 뜨거운 긴장감을 한줄기 시원한 빗줄기가 식혀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장마는 고마운 존재다.

2020년의 시작은 코로나로 내심 원했던 방콕생활과 그로 인한 휴식같은 시간을 만들고 있다.
집에 있는 창이라는 창은 다 열고 있으면 시원한 비소리는 ASMR 이 되고 갑자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내 퀴퀴한 땀냄새를 데려간다.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 집이라고 갑갑하지 않고 잠깐이지만 어디 깊은 산속에 놀러온 기분도 든다.
아쉽게도 이번 장마는 2~3일만에 가버린다고 하니 맑은 공기라도 입속에 머금고 곱씹어야지.
깨끗히 세수한 맑은 밤하늘에서 더욱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들이나 눈에 담아둬야 겠다.

난 여름의 그 장마, 그 폭우, 그 태풍이 좋다.
지긋지긋한 미세먼지를 지워버리고 상큼한 공기맛을 전달해주는 그 억수 같은 물결이 좋다.